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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목) 요한7장_ 선입견이 가지는 위험
- 느헤미야강
-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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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선입견의 위험
7장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잎이 넓은 나뭇가지로 초막을 만들어
일 주일 동안 그곳에서 지내면서
조상들이 당했던 고난을 기억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 성인 남성들은 이 절기 동안에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는데,
예수님의 동생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형인 예수님에게도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권합니다.
그들 보기에 형의 능력이면 예루살렘에서도 얼마든지 먹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따라 가지 않으십니다(6절).
동생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 후에
예수님은 혼자서 그곳으로 향하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동생들과 함께 다니면서 당신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이미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져 있었고,
그분에 대한 견해는 다양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씀을 가르치시자
듣던 사람들은 그 지혜에 놀랍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공적인 코스를 통해
교육 받은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의문에 빠집니다(15절).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이 당신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답하십니다(16-18절).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을 문제 삼아 비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비판이 과연 모세의 율법의 정신에 비추어
정당한지 생각해 보라고 답하십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예수가 과연 그리스도인가?”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즉 메시아에 대해
다양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어디 출신인지를 모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일 수 없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그분이 나사렛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27절).
그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이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며 당신의 진짜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28-29절).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근거로
그분이 메시아가 아닐까 추측합니다(31절).
그 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께 다가 왔습니다.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나는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간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33-34절)라고 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로 피신하실 것을
말하고 있다고 오해합니다(35절).
예수님은 영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시고,
유대인들은 육신적인 차원에서 그 말씀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37-3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막절 기간 동안에 제사장들은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제단에 그 물을 붓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물을 길어다 부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가 흐를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40절).
의심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출신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신다면 베들레헴 정도면 몰라도
갈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41-42절).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랐지만
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 경비병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서 받은 소임
즉 예수를 체포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돌아갑니다.
빈 손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46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지도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믿은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지렁이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다”(48-49절)라고 역정을 냅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니고데모는 율법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니고데모를 책망합니다(51-52절).
묵상:
초막절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선입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자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생각이 때로는
실제로 그것을 알아가는 일을 방해하곤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 비추어 판단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놀라면서도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믿음을 놓아 버립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 “그리스도가 아닐까?” 싶다가도
그리스도에 대해 배운 바를 생각하고 그 의문을 놓아 버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릇된 지식(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때문에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율법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이렇게 눈으로 보고 깨닫는 바를 부정하고 있는데,
그런 선입견이 없었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선입견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지식들 혹은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 없는 선입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진실한 믿음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모든 선입견을 내려 놓고
겸손히 주님 앞에 고개 숙여야 합니다.
내 생각과 기대를 따라 행하는 구원자는
실은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나의 기대와 선입견을 넘어서서 행하시는 분이어야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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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3-30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요7:7
예수님은 세상이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기득권 세력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이런 예수님이 못마땅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칭찬은 달게 받지만 비판은 누구나 싫어한다. 그런데 그 선포되는 말씀이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듣기 거북하면 반발감만 더 생길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으로 하셨나보다.
나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옳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말씀을 준비하다 보면 듣는 사람들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말씀을 조금 희석시키기도 한다.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성령님께서 말할 것을 알려주시는 것을 믿는다. 바라는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부족한 모습 뿐이니 예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
- 이형원전도사 19-03-30
-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7:18:"
하나님께로 부터 왔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근거로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가
아니면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가를 제시하는 걸 보게 된다.
하나님께로 보냄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특별히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내 자신을 완전히 놓치 못하고
그 영광을 구하는 모습이 나에게 있음을 보게 된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보냄을 받았다면 내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과연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사역자로써 그 맡겨진 사명을 감당함으로 나의 영광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나길 원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나를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또 그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