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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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수) 눅6장_안식일 논쟁과 평지설교
- 느헤미야강
- 2019-02-27
- 475 회
- 2 건
1. 1-11절: 안식일 논쟁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당시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세밀하게 구분해 놓았습니다.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는 행위(1절)는 탈곡에 해당했기에 해서는 안 되었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는 행위(6절)도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목숨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밀 이삭을 비벼 먹은 제자들들 두둔하시면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5절)라고 선언하시고,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 세우시고 고쳐 주십니다(8절).
이 행동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이 율법을 넘어서는 권위를 가진 분임을 드러내셨고
또한 율법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장로들의 전통이 얼마나
억압적인지를 폭로하십니다.
본질을 벗어나면 종교는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역기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예수님은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2. 12-16절: 열두 제자를 택하심
예수님은 산에 올라 가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신 다음(12절) 아침이 되자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셔서
“제자”요 “사도”로 삼으십니다(13절).
열두 명을 뽑은 이유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옛 이스라엘을 대신할 새로운 선민을 세우려 하셨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새로운 선민이라는 사실을 상징하기 위해
열둘을 뽑아 세운 것입니다.
누가는 열두 제자를 뽑기 전에 밤을 새워
기도로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열둘을 세우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주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교회의 기초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요한 일 앞에서 오랜 시간 전심을 다해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17-49절: 평지 설교
산에서 내려 와 평지에 서시니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르침도 주셨고 온갖 질병도 고쳐 주셨습니다(17-19절).
누가는 그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일부를 전합니다.
먼저 “복 있는 사람”과 “화 있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20-26절).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지금”입니다(21절, 25절).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지금”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이제 새로운 것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태에 실망하지도 말고
지금의 상태에 안심 하지도 말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 어떠하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27-38절).
그분이 가르치신 사랑은 그들이 그 때까지 알고 있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이 가르쳤던 사랑은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 사이의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의 한계를 허무십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무조건적으로, 아무 제한 없이, 끝까지, 남김없이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는 일입니다(35절).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결국 모든 것을 갚아 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37-38절).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싶으면
우리 자신도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옳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늘 자신을 돌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39-42절).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눈 감고
다른 사람의 허물만 문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실한 변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내면을 늘 세밀하게 들여다 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43-5절).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선 더미”를 쌓는 일입니다.
내면에 선이 쌓이면 눈빛으로, 말로, 행동으로 표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깨달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 대해 강조 하십니다(46-49절).
말씀을 듣고 연구할 뿐 아니라 돈독하게 실천하는 것은
마치 인생의 집을 든든한 기초 위에 세우는 일이 됩니다.
묵상:
주님의 산상보훈은 바로 우리의 결함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는
이런 하나님의 성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우리 안에 죄성이 여전히 있지만 말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행위로 판단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살피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겉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문제는 진심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있는가?
오늘 기억할 한 가지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실천할 한 가지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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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2-28
- "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6:12)"
예수님께서는 열 두명의 제자를 세우시기 전날 밤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12명의 제자를 세우기 위한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묻는 것은 그 일이 내 의지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원하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우리 삶의 모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계신다.
이러한 기도의 삶은 곧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나의 일을 결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을 구함으로 내 인생에 모든 일들을 통해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나는 얼마나 기도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예수님 보다 능력이 뛰어난 자가 아닌데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언제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분 뜻대로 살길 원한다.
내가 잘 못된 길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시며 또 때로는
칭찬받을 일을 했을 때도 그것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심을
고백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바쁘고 분주한 상황에서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되길
바라고 소망한다. -
- 김성민목사 19-03-01
-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6:45
말 조심해야 한다. 내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 적으로 하는 말이 결국 내 마음에 쌓여있던 선과 악의 결과이다. 그러니 한번, 두번 신중히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천, 수만가지의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하나 다 고민하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할까??
자신이 없다면 말을 줄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니면 말을 하지 않은 것도 방법이다. 묵언 수행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현실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것은 내 안의 선을 쌓게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말하는 것이다. 내가 말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말하시게 하는 것이다. 성령님께 말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 안에 계신 선하신 성령님께서 성령의 말, 은혜의 말, 사랑의 말, 생명의 말을 하게 해 주실 것이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