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3.7(목) 눅13장_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느헤미야강
- 2019-03-07
- 459 회
- 2 건
1. 1-9절: 회개에 대해
몇 사람이 주님께 와서 갈릴리 사람들 몇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다가
빌라도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던 일을 말씀 드렸습니다(1).
독립적 성향이 강했던 갈릴리 사람들을 빌라도가 죽인 일이
어떤 역사적 사건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 일을 주님께 고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특별한 잘못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치셨다는 자신들의 생각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뿐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연루시키려는 함정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함정을 피하여 가시면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의 유대인이 죽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이들이 남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다 그들과 같이 망할 것이다(5).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왔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하고
아이티에 지진이 났을 때에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목사들의 말은 주님의 말씀과 다릅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볼 때,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도 회개치 않으면 그런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나라들과 미국이나 한국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회개만으로는 안 되고,
열매 맺는 삶을 살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6~9).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심고 과수원지기에게 맡겼습니다.
열매를 얻으려고 와서 보았지만, 열매를 얻지 못하고
3년을 그렇게 반복하였습니다.
그래서 과수원지기에게 주인은 땅을
더 이상 버리지 않게 뽑아 버리라고 명하지만,
과수원지기는 한 해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무화과나무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은 열매 맺는 백성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했지만,
번번이 하나님께 실망만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2. 10-17절: 안식일 논쟁
주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18년간 귀신들려서 허리가 구부러져 펴지 못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11).
그 여인은 고쳐달라고 구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회중 속에 있는 그녀를 불러내어 귀신을 쫓아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회당장은 회중에게 설교를 하면서 엿새 동안 뭐하고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느냐고 분을 내었습니다.
그의 말은 틀렸다. 주님은 엿새 동안 거기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위선으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안식일에도
자기네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려고 외양간에서 풀어주는 자들입니다.
18년을 귀신에게 붙잡힌 아브라함의 딸을 귀신에게서 풀어준 것을
이런 식으로 판단한다면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것 위에
거짓된 율법의 행위와 경건의 모양을 두는 일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아야 합니다.
3. 18-30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밭에 심은 겨자씨와 같고
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과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18~21).
겨자씨는 이스라엘 농부들이 사용하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지만
잘 농사하면 큰 나무를 이루게 됩니다.
누룩도 보이지 않지만 결국에는 밀가루를 부풀게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이 비유를 기억한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들의 형편과 처지로 인하여
결코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
그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던 어떤 사람은
결국 구원 얻는 자가 적으냐고 물었습니다(23).
주님은 적다 많다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힘쓴다는 단어는 ‘씨름하다, 고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십니까?
우리는 어떻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덧붙이시기를,
들어가기를 구해도 얻지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 얻는 자가 많다, 적다가 아니라,
구해도 얻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회개의 기회는 오직 문이 열려있을 동안 만이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으면 기회가 없습니다(25).
비록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주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말씀을 들었노라고 말하겠지만,
그들을 향한 주님의 대답은 한결같이 ‘모른다’ 입니다.
신앙은 내가 주님을 아는 것일 뿐 아니라,
주님이 나를 아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지막 날에는 의외의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자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나라의 밖에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먼저 된 자인 유대인은 나중 되고,
나중 된 이방인이 먼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4. 31-35절: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주님이 말씀하고 계실 그 때, 어떤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와서
헤롯이 죽이려고 하니까, 피하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두렵게 해서 시험에 들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유일하게 비꼬아서 비난한 경우입니다),
주님께서는 하실 일을 계속 하실 것이라고 그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삼일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상징으로 말씀하셨을 것이고
‘완전하여 지리라’는 것은
주님의 목표를 완성하게 되실 것을 말씀하심입니다(32).
주님은 선지자들이 다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주님도 죽으실 것을 암시하십니다.
예언자로서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은 비극이 아니라 영예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운명을 내다 보시면서 탄식하십니다(34-35절).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표현하시면서 심판의 날을 예고하십니다.
주님은 성전을 ‘너희 집’이라고 하심으로써(35),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떠나셨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선택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배꼽”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종교를 권력 삼아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박해했고 때로는 살해했습니다.
이제 그 죄가 예수님의 죽음에서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겠지만,
그토록 죄를 쌓아 온 예루살렘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35절) 할 그 때까지
즉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폐허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주후 70년 로마의 군대로 인하여 성취되었습니다.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그 의미가 어렵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주님 재림 전에
주님을 믿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예수님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재림의 날에는
예수님을 주로 강제적으로 고백하게 되고야 말 것이라는
말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이전글 3.8(금) 눅14장_제자가 치를 대가 19.03.08
- 다음글 3.6(수) 눅12장_이 땅에서 잘 사는 길 19.03.06
-
- 김성민목사 19-03-08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3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소서’ 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끝까지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성도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 ‘들어가는 못하는 자가 많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 그 길을 옳바르게 걷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길을 똑바로 걷고 있는 것인가? 그 좁은 문, 좁은 길을 들어가기 위해 나는 힘쓰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통해 이 길을 잘 가고 있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누가복음 13장 말씀의 서두로 돌아가 보면 그 답이 있다. 그 답은 회개와 열매이다. 예수님께서 5절 말씀에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말씀하셨고, 9절 말씀에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버린다”말씀하신다.
인간은 죄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만을 붙잡아야 한다. 예수님과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순간 죄에 노출되고 만다. 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와 씨름하며 죄를 용서받기 위해 회개를 해야한다.
또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는 예수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으니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면 나는 좁은 문을 향하여, 좁은 길로 잘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예수님의 향기를 가득 담긴 삶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기대한다. -
- 이형원전도사 19-03-09
- "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눅13:12)"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귀신들려 앓으며 굽어서 펴지 못하는 여자를 만나셨다.
그 곳에는 회당장이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여인을 고쳐주는 일은 자칫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조금더 주저함 없이 그 여자를 고쳐 주셨다.
그리고 자신을 비난 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고발함으로
그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선에 대하여 반대하고
오히려 그 행위를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무엇인 선인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행할 때 내가 사람의 눈치를 보는지 아니면 사람을 눈치를 보는지에 따라
그 행함에 차이가 나타날 뿐이다.
예수님처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때로는 그 일로 인하여 비난을 받고 때로는 곤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주저함 없이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주의 종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