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1.23(금) 스2장-궤도수정

  • 느헤미야강
  • 2018-11-23
  • 442 회
  • 2 건

<에스라 2>

 

궤도수정(2;1-58);

에스라 2장은 안락한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황폐하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유다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포로된 곳에서 세 번에 걸쳐 돌아오게 되는데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고국인 유다 땅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귀향한 사람들이 있지만 일부는 그대로 바벨론 땅에 안주했습니다.

타국에 노예로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으며 마련한 터전이라

더욱 더 애착이 가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예루살렘과 유다가 얼마나 황폐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고,

그 땅으로 향하는 여정에 도살이고 있는

이방인들의 위협으로 인해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국인 유다 땅을 향해 떠날 수 있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자신을 순종했던 것입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힘들 것이고,

고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안락하고 평안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삶의 터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이방민족과 전쟁도 불사해야 하며,

황폐하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중수하는

고통스러운 삶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고국을 향해 희망의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기는 이스라엘에게는 치욕이자 커다란 시련이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철저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 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 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137:1,5,6)

 

바벨론으로 유배온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되돌아 본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하신 은혜를 깨달았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고레스왕에 임하게 되자

바벨론의 안락한 삶의 자리를 포기하고 고국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이 모든 것이 내 손에서 없어질까

손을 꽉 움켜쥔 채로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손으로 움켜쥐었다고 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채워 주시는 것만이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쥐가 나도록 꽉 움켜잡은

내 손을 훌 훌 털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귀환자들의 계보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포로된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말씀으로만 살겠다고 다짐했던 사람들,

바르게 서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임을 믿은 사람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을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의 믿음과 용기를

칭찬하고 격려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살아갈 그들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뿌리와 가족 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지켜졌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결코 떠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려는 것입니다.

 

전회위복(2;59-70);

에스라 2장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1차포로 귀환자들을

혈통별, 지역별, 신분별로 구분하여 숫자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들 귀환자들 가운데는 혈통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있었고(59),

나아가 제사장의 신분이 불분명한 귀환자들도 있었습니다(61-62).

에스라서 저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유대인의 혈통 또는 제사장의 혈통인지가

불분명한 그룹이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59절의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652명의 사람들은

당시에는 DNA 검사를 해서 밝힐 수 있는 과학도 없었기에

자기들이 어느 혈통에 속하여 있는지를

입증할 아무런 근거가 없었습니다.

혈통을 증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현실을 더 중요시하며 현실의 삶에

자신을 철저히 적응시킨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그것도 포로로

수많은 역경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어느 덧 이방 문화권에 점차 동화되어

종국에는 자신의 정통성인 혈통조차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자신을 헌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혈통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바벨론이라는 현실의 삶속에 동화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조차도 망각하며 살았지만,

고레스왕의 유다로의 귀환령을 듣자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되돌아온 사람들임을 의미합니다.

 

이들 외에도 제사장 신분이 불확실한 무리도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그 사실여부가 밝혀지기 전까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할 수 도 없었고

지성물을 먹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려는

유대자손들의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들의 수는

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이었고,

이밖에도 이들과 함께 온 종들과 짐승들의 수가 계수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2장에서 귀환자들의 계보를 자세히 기록하여 밝힌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해방을 기뻐하며,

성전을 건축하라는 사명을 위하여 기꺼이

현재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의

믿음과 용기를 격려하고 칭찬하려는 뜻에서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어떤 족장들은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해 예물을 드렸는데 기쁘게 드리되

힘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였습니다(68-69).

이미 고레스 왕의 귀환령이 공포되자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은 자발적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 강요나 강압이 아닌 자발적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그리고 개인의 능력대로 헌금을 하였습니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

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70)

 

70절 한 절이 2장 전체에 대한 요약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에 귀환한 사람들이 유대 땅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것이 아니라

바로 각자의 성읍에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닦았습니다.

우리는 간혹 삶의 순서를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최우선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자리를 유기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소방관에게 예배와 화재가 동시에 일어난다면

화재진압이 최우선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의 터전을 제대로 닦아놓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나의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있는지 이 땅에 있는지...

편안하고 안락한 바벨론, 페르시야에 있는지...

힘들고 수고해야 하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 john 18-11-24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라 2:68)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이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어떤 족장들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기쁘게 예물을 드렸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나의 물질을 나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어떤 누구, 혹은 무엇인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족장들은 자신의 것을 기꺼이 드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힘 닿는데 까지 예물을 드렸다.

      족장 정도 되면 소유가 많았을테니 이렇게 드릴 수 있었을까?
      사실 소유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저마다 용도가 있기에
      소유가 많은 사람도 자신의 것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일을 위해 쓴느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는 더욱 인색해지기 쉽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또한 그분의 나라와 의를 위한 관심과 열심의 차이이다.
      우리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가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마음은, 나의 기준과 가치관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나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또한 이웃이나 다른 이들을 위해 얼마나 내것을 드리는가?
      또한 드릴 때에도 억지로, 인색함으로 하지는 않는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은 본문의 족장들과 같이
      자신의 것을 드려 헌신하는 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음며
      새로운 결단과 다짐을 올려 드리게 된다. 오늘도 내 시간과 물질과 정성과 건강을 드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할 것을.
      이를 통해 영광 받으실 주님을 기대한다.
    • 이형원전도사 18-11-25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스2:1)"

      에스라 2장에 말씀에는 귀향자의 명단이 자세하기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멸망당한 그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제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쩌면 포로의 생활이었지만 그 생활이 익숙해 졌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신앙을 바탕으로 이제 익숙해 지기 시작하는 포로의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는 나에게 익숙한 그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갔듯이
      우리도 인생길 속에서 나의 편안함과 안정된 삶의 자리를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이럴 때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가심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지금 내가 좋아보이는 것 편하게 느껴지는 곳은 소돔과 고모라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곳이 나에게 가장 좋은 곳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시는 그곳으로 나의 삶의 초점을 맞추며
      나아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