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1.30(금) 스8장_영적 자존심

  • 느헤미야강
  •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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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건

아닥사스다 왕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2차 귀환을 하게 되는

무리들의 지도자인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서 가졌던 태도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잃어버린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차 귀환한 백성의 자손별 숫자(1~14):

전체 숫자는 남자가 약1500명 정도로 추산되고

부녀자를 합하면 약5000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레위 사람의 부재(15~20):

아하와 강가에 귀환하게 될 백성들이 모였는데

에스라가 발견한 것은 거기에 레위인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 성전이었는데

레위인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목사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에스라는 급히 족장들을 보아 레위인을 찾도록 지시를 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레위인들을 찾게 됩니다.

 

여기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입어라는 특징적인 구절은

에스라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표현입니다.

말하자면, 이 역사적 귀환과 성전 건축이란 사건은

결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어떠한가?

이치에 맞고 사리에 맞는 수준의 일들만 일어나는 것인가?

나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

나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기대하십시오.

 

에스라의 영적 자존심과 무사 귀환(21~36):

에스라는 출발하기에 앞서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합니다.

에스라는 왕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7:6),

부녀자들을 데리고 가는 이 긴 여행 길의 안전을 위하여

왕에게 군사를 요청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미 왕에게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수차례 말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말과

신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결심은 5000명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고(23)

하나님의 손이 도우사

이들을 모든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31).

 

묵상과 적용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교회에게,

목사인 제 자신에게

영적 자존심이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영적 자존심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과 말로 한 표현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삶을 요구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닥칠 때,

위기의 때가 찾아올 때,

우리가 평상시에 고백하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말과 신앙에 합당하게 행동하는가?

교회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그분을 바라보면서

그 손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나아가는가?

 

목사인 나는 세상적 방식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교회를 키워가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그것을 기대하며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을 따라서 목양을 하는가?

 

이 본문을 통하여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영적 자존심을 회복하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 john 18-12-01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스 8:15)

      예루살렘 귀환을 위해 모인 백성들 가운데
      레위지파의 사람들이 없는 것을 발견한 에스라는
      족장들에게 레위인을 찾아보게 했고,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레위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사람을 길러내는 사명,
      특별히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일들이
      참으로 중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기에
      성전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었는데,
      그들 가운데서 성전의 일을 돌볼 레위인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은
      곧 그들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바벨론, 바사제국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으며
      자신들의 정통성을 유지해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의 존재이유라고 한다면
      자신들이 해야할 일과 가야할 길을 후대에 전수하는 일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오늘 우리도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 신앙의 유산을 유지하며 계승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점차 세속적이 되어가는 세상의 풍조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이 일을 게을리한다면
      우리의 신앙도 그 근간이 흔들릴 것이고
      우리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 가운데 지금 내가 감당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이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또 그 책임이 얼마나 크고 중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결국 우리 신앙 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더욱 마음과 뜻을 다해, 또한 힘과 정성을 다해
      맡겨진 영혼들을 양육해야 하기로 결정한다.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언제든 아멘으로 나아갈
      준비된 영혼들을 꿈꾸며.
    • 이형원전도사 18-12-04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8:23)"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는 말씀이 내게 다가온다.
      그들은 왕에게 안전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가 부끄러웠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켜주시는 분이심을 입으로는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안전을 왕에게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왕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세상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도록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다.
      믿음의 결단을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자리에서 주님께 기도 할 때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속히 응답하여 주신다.

      얼마나 많은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나 자신을 돌아본다.
      때로는 설교를 해놓고 그 설교대로 살아가지 못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삶을 살아갈 때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겠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하게 기도함으로 그 어쩔 수 없는 상황가운데서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며 내 삶에 깊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길 원한다.
      그럼으로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종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