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2,1(토) 스9장_교회안에서 죄악이 드러날때
- 느헤미야강
- 2018-12-01
- 424 회
- 2 건
죄악의 실상(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옛 조상들의 범죄가 동일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지도자들이 에스라에게 알려준 범죄의 실상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방 백성들과 거래를 하고 함께 살면서
그들과 혼인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입니다.
혼인관계는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하나님 안에서의 언약관계이기에 단순한 부부관계를 넘어
신앙적 관계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방인들과 혼인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그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일부 타락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었습니다(1).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즉 영적 지도자들까지도
이 범죄에 백성들과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일에 앞장을 선 자들이
정치 지도자들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2).
에스라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반응—기도(3~15):
에스라는 기가 막혀서 옷을 찢으며
저녁 제사를 드리기까지 그냥 성전에 앉아있었습니.
놀라운 것은 에스라가 그렇게 앉아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이
에스라에게 모여왔다는 사실입니다(4).
에스라와 이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안다면
그 백성은 참으로 복된 백성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말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반증이 될 뿐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6~15),
마치 자기의 죄와 같이 여기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이 영적 지도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백성의 범죄함이 드러날 때
하나님께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는 것입니다(히13:17).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에스라가 더욱 끔찍하게 생각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나라를 멸하시고 그들을 외국에 포로(노예)로 보내셨는데,
그 댓가를 경험하고서도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다시 회복하여 여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범죄하는 것이
도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이다.
묵상과 적용;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안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듯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범죄한 자들은 단지
그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제사장과 레위 자손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할 때,
많은 직분자들 가운데도, 목사들 가운데도
이런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에스라가 근심하고 울며 하나님 앞에 앉아 있을 때
에스라에게 나아온 자들은
그들의 혈통적 계보나 타이틀로 설명되지 않고
오직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즉, 세상은 그리고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지 않는 자’ 둘로 나누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말로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않은 자의 구분입니다.
참으로 거듭난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것’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도 죄를 지을 수 있으나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결코 그 죄 가운데 머물러
타락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요일3:9)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떪’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입니다.
참된 영적 지도자의 모습은 백성들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자기가 회개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당장에 흥분하여 그 죄의 여부를 가려서
심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서 먼저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공적인 범죄가 드러나게 될 때에
제일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이 범죄임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먼저 회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죄를 드러내고 따지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죄인을 찾아내서 벌을 주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먼저 깨달은 자들이 바로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이 원리가 오늘날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에스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와 같은
참된 영적 지도자들이 오늘날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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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12-04
-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스9:4)"
오늘 말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징계와 회복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죄악의 모습에서 떠나지 못하고 예전과 같은 죄를 짓는자들이고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할줄 아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때로는 나의 삶 속에서 그 분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죄악의 모습이 남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죄악된 마음과 적당히 타협하며 여전히 그 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며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죄악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위해 노력하는 자가 있다.
나의 삶 속에 지금까지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돌이켜 보면 많은 은혜를 입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 속에 죄악이 자리하고 있고 때로는 죄와의 싸움에서 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자들과 같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안에 있고 또 그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며
이제 말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복되는 경험을 하게 될 줄로 믿는다.
내 마음 속에 또한 나의 삶의 모습 속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하길 원한다.
그리하여 그 어떤 죄의 유혹에서도 넉넉히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12-08
-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스 9:2)
하나님의 법을 떠나 멸망을 겪었음에도
망국의 고통 속에서 여전히 율법대로 살지 않았던
유다 백성들의 실상이 에스라 시다에 비로소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말씀하셨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이방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세상과 또 다시 섞여버렸다.
그런데 이 죄악에 앞장 섰던 사람들이
방백들과 고관들이었다는 사실이 어딘가 씁쓸하다.
백성들의 삶에 모범이 되었어야 하는 그들이
먼저 나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나라가 되기는 커녕 스스로 멸망의 길을 향해 갔던 것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사역자로서의 길을 가는 나의 삶이
늘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포로시대의 방백과 고관들과 같지 않고
예수님 때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같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로서
내가 먼저 헌신하고 절제하고 희생하면서
그렇게 모범이 되는 신앙으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는다.
나부터도 내 정욕을 따라 살면서
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면서
그저 이름만 사역자로 있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말씀대로 살아가고 삶으로 모범을 보여
나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증거되는 일이
오늘 나의 삶에 나타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