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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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토) 왕하10장 _ 하나님 마음인가 자기 열심인가

  • 느헤미야강
  • 2018-11-03
  • 453 회
  • 2 건

1.

예후는 아합의 집과 바알 숭배를 철저히 궤멸합니다.

사마리아에 있던 아합 집안의 왕자들 70명의 목숨을 끊었고,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만난 유다의 왕자들 42명을 죽였으며,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모든 바알 숭배자들을 죽였습니다.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예언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졌습니다(10).

 

하나님께서는 예후가 아합의 집과 바알 숭배에 대하여

행한 일을 인정하셨습니다.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고 하셨습니다(30).

 

그러나 예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29).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섬기게 한 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31).

뿐만 아니라, 예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한계를 넘어 지나치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아합의 집을 넘어, 아합에게 속한 귀족들,

신뢰받는 자들, 그리고 제사장들까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죽임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일을 행했습니다(11).

 

2.

그러나 예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아람 왕 하사엘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내기 시작하셨습니다(32~33).

이것은 예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고

동시에 여로보암 이래 역대 왕들의 불신앙과

반역에 대한 징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편 예후를 통해 아합의 집을 심판하셨지만,

예후는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3.

참된 신앙은 분별력 없는 무관심한 관용과

자기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을 구별할 줄 모르는

오도된 열심이 아닙니다.

다 괜찮아하는 자세와

다 죽여야 돼하는 극단적 태도 사이에

신앙은 존재합니다.

예후가 보여준 잔인함과 폭력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샬롬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호세아 1:4~5은 하나님께서 이스르엘에서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예후의 지나친 열심은

자신의 길과 하나님의 길을 무분별하게 동일시하고

엘리야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도를 넘어서는 폭력을 정당화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심판 행위가

충분히 깊이 행해지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즉 예후의 마음 깊은 곳까지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어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후는 전심으로율법을 행하지 않았고

자기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행했을 뿐입니다(31).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율법적 열심입니다.

율법적 열심과 복음적 열심을 구분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자기 열심을 분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종종 자기 열심과 분노를 하나님의 것으로

무분별하게 동일시하고 행하기가 얼마나 쉬운지요.

 

이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입니다.

자기 열심으로 행한 하나님의 일과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개혁되지 않는 열심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지 않습니다.

 

4. 묵상하기

 

시원하다!

아합의 집안과 남유다 아하시야의 형제들까지 깨끗하게 처리하고

바알의 제사장까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정리했습니다.

예후의 활약은 개대했던 만큼 속을 시원케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겉모습은 화려하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예후의 개혁을 하나님은 아쉬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후에게 기대한 것이 많았습니다.

화려한 개인기로 여러 가지 개혁을 하는 것도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문제를 도려내고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오게 하는

중심이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후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대하셨는데

예후가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영토를 잘라내기 시작하셨습니다(32).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죄 문제를 잘라내지 못할 때,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과 신앙생활의 기본을 이루어 드리지 못할 때,

하나님은 참고 또 기다리시는데 하나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토를 잘라내기 시작하십니다.

 

화려하게 신앙생활하고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믿음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본을 지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길을 결단하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형원전도사 18-11-06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10:31)"

      예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에게 맡겨진 일을 철저하게 행하였다.
      아합에게 속한 모든 자를 죽이고 바알을 섬기는 자들 또한 진멸하고
      바알의 목상을 헐고 신당을 헐어서 변소로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을 행하였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축복의 말씀 또한 듣게 되었다.
      하지만 아울러 성경은 그를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죽일자를 죽이고 헐어버려야
      할 것들을 헐어버렸지만 그가 이일을 했던 동기 안에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 또한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결정적으로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돌아오지 못했는데 아마도 이러한 죄악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지속했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까지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정치적
      성공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정치적 유익이
      부합되는 선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결국 죄에서 떠나지 않은 왕으로 기록되어졌고 그 땅 이스라엘을
      잘라내게 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그 한가지가 결국 우리를 죄악의 길로 인도한다.
      그 약한 것을 알기에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그것으로 넘어지게 한다.
      그것이 물질이든, 명예든, 자존심이든, 때로는 음란함이든 그 한 가지를
      통해 계속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그리고 그것에 승리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다 할지라도 심지어 하나님께 축복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다해도
      우리는 결국 범죄한 자로 기록될 수 밖에 없다.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한 가지를 주님께 온전히 맡기길 원한다.
      그것이 나를 지배할 수 없도록 내 스스로를 돌아보길 원한다.
      그 때 그 유혹에서 벗어나 범죄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서게 될 줄 믿는다.
    • john 18-11-06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10:1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합 집안에 대한 징계의 도구로 사용된 예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합 집안을 멸한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 특히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까지 죽이는 것을보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셨으면
      그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만큼, 말씀하신만큼만 하면 되는데
      그는 그보다 더 앞서나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다.
      그리고 그 방법은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일이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분의 역사를 경험했다 할지라도
      인간의 열심이 앞서면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사명들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종종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해 내려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결국 나의 뜻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사사로운 욕심이 스며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행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 열심을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쉽고,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하나님의 뜻을 놓칠 때가 많은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나에게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며
      나에게 주신 사명임을 기억하는 내가 되기를,
      또한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열심으로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