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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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금) 왕상7장_야긴과 보아스 & 교회의 기둥들
- 느헤미야강
- 2018-10-05
- 578 회
- 2 건
1.
왕상7장은 6장에서 이어지는 성전 건축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1~12절에서 솔로몬의 왕궁 건축 기사가 삽입되지만
이어지는 것은 성전 건축 기사입니다.
솔로몬은 놋 기술자 히람을 두로에서 초빙하여
성전 건축을 마무리합니다(13~14).
이 히람은 두로 왕 히람이 아닌(5:1)
이스라엘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로,
아버지는 두로 사람 놋쇠 대장장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셨을 때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예비하셨듯이(출 31)
이제는 히람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2.
가장 먼저 제작된 것은 성전 문의 두 기둥으로(15~22)
높이 18규빗(8m), 둘레 12규빗(5.4m)으로
그 규모가 웅장했습니다.
두 기둥에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야긴은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보아스는 ‘그 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능력많으신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3.
성전 건축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성막에서는 보지 못했던 바다(the Sea)입니다(23~26).
바다는 거대한 규모의 물통입니다.
직경 10규빗(4.5m), 높이 5규빗(2.3m),
둘레 30규빗(13.5m)인 원형 물통으로
2000밧(11,500 갤런)의 물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23).
그리고 직경 4규빗(1.8m), 용량 40밧(230 갤런)의
물두멍 열 개를 만들었습니다(38).
바다는 제사장이 몸을 씻기 위한 용도였고
물두멍들은 제물을 씻는 용도로 구별되었을 것입니다.
4.
성전 문에 두 기둥이 있듯이 교회에도 기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직분자들이다.
그들은 야긴과 보아스의 메시지를 가진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야긴 즉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라는 메시지와
보아스, ‘하나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그들의 삶과 태도와 말로써 증거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와 직분자들은
야긴과 보아스의 메시지를 전하는가?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이 메시지를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그런 자리에 서기를 사모하는가?
진정 야긴과 보아스 같은
교회의 기둥이 되려는 갈망을 가지고 있는가?
5.
큰 바다와 10개의 물두멍은
실제적인 필요도 있었겠지만
상징적 의미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전은 언제나 죄인의 죄가 씻겨져야 하는 곳입니다.
바다와 많은 물두멍들의 많은 물을 다 써도
우리의 머리털보다 많고 더러운 죄는
온전히 씻겨질 수 없습니다.
죄인의 죄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 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바다와 물두멍들 앞에서
죄인의 죄가 얼마나 크며 심각한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기도하러 나아갈 때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를 생각하는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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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10-06
-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왕상7:21)"
오늘의 말씀은 솔로몬 왕궁에 대한 말씀과 또 성전 건축에 대한 말씀이 연이어서 나오고 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 가운데 성전을 건축하며 세운 두 기둥의 이름을 각 각 야긴과 보아스라
지었음을 보게 되는데 그 뜻을 보면 야긴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 보아스는 '그 안에 힘이 있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 건축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을 세우시고 또 하나님께는 그러한 능력이 능히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므로 두 기둥의 이름이 야긴과 보아스라는 것은 이러한 신앙의 고백이 그 가운데
들어간 것임을 반증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세워가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내 삶의 순간순간에 개입하셔서
나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가심을 믿고 또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가신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그 어떠한 일도 나에게
두려울 것이 없게 된다. 그 어떤 일도 하나님께서 이루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 삶에 이 야긴과 보아스의 역사가 항상 나타나길 기도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세워가시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라
나아가는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세움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10-06
-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왕상 7:21)
솔로몬의 때에 세워진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었다.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 두 기둥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그 안에 능력이 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또한 오늘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내 삶의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가운데 세워지고
그분의 능력으로만 온전히 서게 된다.
이러한 원리 가운데서만 온전하여 지고 굳건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그 어떤 공동체든
하나님의 이름을 힘입어 사는 그 어떤 사람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또한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나는 이 원리를 가지고 살고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나는 자주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을 더 드러냈고
하나님께서 세워가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기보다
내 지식과 경험과 방법으로 나를 더 앞세웠음을 고백한다.
그렇기에 온전할 수도 굳건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능력으로
당신의 일을,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을 세우시며 만들어 가신다.
이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기에 나는 늘 내 자아를 앞세웠다.
하나님은 당신의 크고 높으신 경륜 가운데
당신의 일을 가장 선하게 이끌어 가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온전하심을 믿음으로,
나의 삶에서, 내가 감당하는 모든 부분에서
늘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온전히 일 하실 수 있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기기로 결단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야긴이요 보아스가 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