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0.12(금) 왕상13_기회를 거절하지 말라
- 느헤미야강
- 2018-10-12
- 516 회
- 2 건
1.
여로보암이 거짓 종교를 만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에’ 한 선지자를 일으켜
말씀을 주셔서 벧엘로 보내셨습니다(1).
이것은 여로보암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슬프게도 은혜의 기회는 거절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를 보시며
우리를 돌이키게 하려고 일하십니다.
마침 벧엘의 단에서 분향하던 여로보암 앞에 선 선지자는
후일(300년 후) 유다의 왕 요시야를 통해서
이 우상 숭배의 단을 다 헐고
거짓 제사장들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면서,
그 징조로 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2~3).
여러보암이 분노하여 그를 잡으라고 명령하며 손을 뻗을 때
그의 손은 말라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선지자의 말대로 단이 무너지고 재가 쏟아졌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다가 손이 마르는
한 가지 징조를 더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여로보암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3.
여로보암이 해야 했던 유일한 것은 회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 대신 자기 손을 고쳐준 선지자를
궁으로 데려가 상을 베풀 생각을 했습니다(7).
이것은 생각이 육신적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롬 8:6).
헌금과 예배와 봉사가 회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벧엘에서 아무 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받지도 말라는
명령을 받았던 선지자는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자들을
어떻게 여기시는가를 보여줍니다.
우상숭배자들과는 사귀지도 말아야 합니다(고전 5:11).
4.
성경에 나오는 난해한 이야기 하나가 이어집니다.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가 등장합니다(11).
그는 벧엘에 살면서 타락한 길을 가는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아들들을 통해서 참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든지,
혹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 그는 선지자를 추적했고
거짓말로 속여 그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18).
선지자는 속아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는 중에 놀랍게도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거짓 선지자에게 임했고
그것은 참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비극적 예언이었습니다(20~22).
결국 선지자는 가는 길에 사자를 만나 죽게 되고
늙은 거짓 선지자는 그의 시신에 존경심을 보이며
자기 죄가 그를 죽음으로 데려갔다는 것을 슬퍼하며,
결국 그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5.
결국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기회를 저버립니다.
‘이 일 후에도’(33) 그는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고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제사장을 삼아
우상 숭배를 계속함으로써 여로보암 가문의 죄를 형성하여
후대까지 미치는 악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6.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은혜의 기회를 주십니다.
여로보암이 범죄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회개의 기회이자 은혜의 기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자들을 향해서 은혜의 기회를 베푸십니다.
문제는 어떻게 반응하는가입니다.
둘째, 헌금과 예배와 봉사가 회개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여로보암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은 회개하는 대신 선지자와 친해지고
그에게 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뭔가를 깨닫게 하실 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
죄를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상숭배자들과는 사귀지도 말라.
먹고 마심은 교제를 의미하기에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우상 숭배의 온상인 벧엘에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타락한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써 죽임을 당했습니다.
순종은 분별을 전제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맡은 사람,
메시지와 메신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지만,
그 말씀을 맡은 사람은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선지자의 말씀은 300년 후에 이루어지지만,
선지자 자신은 연약한 그릇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넘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기적이나 기적 체험이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여로보암은 선지자의 말만 들은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의 징조를 기적으로
눈 앞에서 체험하였고 자기 몸의 치유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져오는 것도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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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10-14
-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왕상13:19)"
믿음의 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음성과 세상의 음성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하나님의 음성만을 듣고 가는 것이 곧 믿음 생활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또 때로는 사탄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하여 우리에게 들려질 때도 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도 그 음성을 구분하지 못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서 그 말씀을 대언했고 기적을 보이기도 했으며 말씀 때문에
왕이 베푸는 호의도 거절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짓 선지자가 그를 속이려 하는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잘 못 판단했고
그 결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찌보면 조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른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서 속인 일이였는데 속은 사람보다는 속인 사람을 벌하는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분별하지 못할 때 우리가 어떤 길에 빠지게 되는가를
분며히 보여준다는 것에서 오늘 말씀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이야기, 또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이 주는 유혹을 잘 구분하지
못하며 살아가게 된다면 나 또한 이 하나님의 사람과 다름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고 그 뿐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그 분의 뜻대로 내 삶을 이루어 나갈 줄 믿는다.
또 한가지는 한 번의 순종이 나의 믿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된다.
한 번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말씀으로 비춰보고 언제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한다.
이러한 생활이 곧 경건의 생활이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일 것이다.
언제나 주님의 음성에만 기기울이고 그 분의 음성대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
- john 18-10-14
-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왕상 13:4)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채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경고 앞에 불쾌한 기색 비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를 잡으려 했는데
결국 그는 말씀의 성취와 더불어 자신의 손이 마르는 징계를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한 번만 자신을 낮추고
그 말씀에 한 번만 자신을 비춰 보았더라면
이러한 죄악의 자리에, 징계의 자리에 서지 않았겠지만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본인을 더 앞세워
오늘 이 참담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여로보암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손한 태도를 취하며,
나의 죄악 됨과 연약함, 믿음 없음, 실패와 실수를 인정하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
자주 나를 일깨우셨지만 그때마다 나의 부족함을
숨기고 가리며 합리화 하기에만 바빴던 내 모습.
하나님의 준엄하신 말씀 앞에 선 나의 태도가
여로보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매일의 삶 속에 여전히 자주 넘어지고 무너지는 나 이지만,
그 때마다 사랑의 손길로 나를 깨우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의 약함을 주시하고 인정함으로
말씀으로 늘 나를 지켜 깨끗하게 살기를 소망하며 결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