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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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월) 왕상21장_불의한 시대를 살았던 나봇이야기
- 느헤미야강
- 2018-10-22
- 516 회
- 2 건
1.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 외에
이스르엘에도 왕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근처에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에게 값을 주고 팔라는 아합의 요구에
나봇은 포도원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므로
팔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이 말은 나봇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의인의 믿음이 당대에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보여줍니다.
2.
아합의 탐욕은 모든 이들의 탐욕이 그렇듯
채워질 줄 몰랐습니다.
아합에게 왕권은 탐욕을 원하는대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나봇은 아합과는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나봇은 불신앙의 시대, 우상숭배와 배교의 시대에
자기 믿음을 가지고 살던
신실한 남은 자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두워져 가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남겨두십니다(19:18).
나봇은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과 자기에게 주신
‘기업’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도 물론 왕의 호의를 얻을 기회와
두둑이 땅값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고 왕에게 미움을 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하나님께서 금하신다’고 거절합니다.
이것은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타협할 문제가 아닙니다!
나봇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나오자
유약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왕
아합은 몸져 눕습니다.
3.
상황을 파악한 이세벨은 조금의 주저나 망설임도 없이
극악한 음모를 꾸미고 실행합니다.
나봇의 성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왕의 인을 쳐서 편지를 보내,
나봇에 대하여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언을 할 불량자 둘을 세워
그 죄목으로 돌로 쳐 죽이라는 지시였습니다.
이세벨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하나님의 율법 조항들에 맞추어
음모를 꾸몄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민 35:30; 신 17:5~6; 19:15).
하나님보다 왕과 왕의 부인을 더 두려워했던
장로와 귀족들은 이 참람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금식을 선포하는 거짓까지 행하면서
이세벨의 분부를 수행하여
의인 나봇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4.
하나님은 엘리야를 명하여 흥분해서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가는 아합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여로보암이나 바아사의 집 같이
멸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고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먹어
땅에 묻히지도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성경은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가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고 지적하지만(25)
그렇다고 아합의 죄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26).
5.
이 말을 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다녔습니다(27).
이것은 회개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태도를 보시고
재앙을 그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다음 세대에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9).
그렇다면 아합은 정말 회개했는가?
그의 이후의 모든 행적을 보건대
그의 회개는 진정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의 겸비함을 인하여
심판을 연기해주셨는가?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의 삶을 특별히 길게 조망하면서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무궁하심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왕에게 어느 왕보다도
더 많은 선지자를 주셨고,
게다가 구약 역사 최고의 선지자라 할
엘리야를 보내주셨고,
참고 참으시면서 기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6.
탐욕과 권력(재력)의 위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의 탐욕의 정체를 보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그 정체를 모른 채,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우리 안의 탐욕의 정체를 알고
그것이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아는 자는 복됩니다.
탐욕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대상입니다(갈 5:24).
죄를 이기는 방법은 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언지하에 ‘하나님이 금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봇이 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아합과 앉아서 차를 마시며 오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언지하에 끊어버렸습니다.
죄와 대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봇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키려고 감당한 희생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는 복된 믿음의 행위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기업,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손해를 무릅쓰고 살아가는가?
보배로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나의 삶을 조정하는가?
아니면 다른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믿음을 조정하지는 않는가?
믿음의 타협을 시대의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나봇은 물질적인 이익을 희생하고
통치자의 진노를 감수할 정도로 하나님의 법을
깊이 경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과 같은 불신앙의 시대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그 시대를 탓함으로 자신의 타협을
무마하며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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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10-24
-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왕상 21:7)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아합을 대신하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계략을 세운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로 아내를 주셨고,
그 둘이 한 몸을 이뤄 선을 이뤄 가야만 했음에도
아합과 이세벨은 오히려 서로에게 악한 영향을 끼쳤다.
만일 아합이 악한 생각을 품고 그것을 행한다 할지라도
이세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면
남편의 일을 말리며 바른 길을 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합도 이세벨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과 그 가문은 결국 엄청난 징계를 받는다.
오늘 말씀 가운데이 둘의 모습을 보며
내가 만나는,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나 역시도 때로는 다른 사람의 악행에 동조하며
오히려 그것을 더욱 부추기고, 힘을 보태던 때가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선한 길을, 하나님의 뜻을 제시했어야 함이 옳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판단과 지식으로 악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행해왔던 내 모습이 마치
이세벨의 모습과 같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먼저 언제나 선한 마음을 품어 의를 이루고,
또한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의를 전하는, 선한 영향력을 발하는
그런 내가 되기를 결단하며 소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세벨과 같이 저주 받은 인생을
살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10-24
-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왕상21:3)"
아합 왕은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팔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포도원이나
그에 합당한 돈을 주겠다는 약속도 함께 했다.
하지만 나봇은 일언지하에 그의 제의를 거절하게 된다. 그가 왕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셨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의 왕의 말을 듣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세상 최고의 권력자가 더 좋은 것으로 그를 유혹했지만 그는 세상의 좋은 것보다 하나님께서
금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세상 속에 살아가다보면 많은 유혹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유혹하면서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의 일에 더 관심을 갖도록 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범하는 것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속삭이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고지 곧대로 지키는 자를 어리석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이 나봇의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것보다 우선될 수 없다. 그것을 머리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나봇과 같은 신앙과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세상의 큰 흐름에 쫓겨 살기보다 그 흐름을 거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 길 원한다.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루하루 주님 앞에 기도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