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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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화) 왕상22장_ 분별과 따름
- 느헤미야강
- 2018-10-23
- 477 회
- 2 건
1.
열왕기상의 마지막 장은 아합의 죽음과
아합과 화친했던 유다 왕 여호사밧에 대한 묘사
그리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에 대한 평가를 기록합니다.
아합은 누구보다 많은 선지자들을 만났던 왕입니다.
이것은 실로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된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함으로써 엘리야의 예언대로(21:19)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2.
아합의 시대에 유다와 이스라엘의 평화가 시작되었습니다(1,44).
벤하닷과의 전쟁 후 아람과 잠시 평화 관계를 유지했고,
왕국의 분열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던 전쟁은
유다 왕 여호사밧이 즉위한 뒤 평화 모드로 들어가
아합과 여호사밧은 결혼동맹까지 맺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계산에 좋은 것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3.
아람과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의 방문에 맞추어
자신의 길르앗 라못 탈환 계획을 내놓습니다.
길르앗 라못은 본래 갓 지파의 기업 안에
도피성으로 지정된 성읍이었습니다(신 4:43; 수 20:8).
그러나 아람에게 빼앗겼고
아합은 아람 왕 벤하닷과의 약속에서(20:34)
그 땅을 돌려받을 것을 예상했으나
그 일이 실행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건한 여호사밧은 그 땅이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주신 땅이었기에
당연히 이 전쟁에 함께 해야 한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경건한 왕답게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을 것을 제안하고
아합은 선지자 400명을 불렀습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들이 아합에게 고용된
거짓 선지자들인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다른 선지자는 없는지 묻는 여호사밧에게
미가야가 있지만(사실은 엘리야도 있었습니다!)
그는 듣기 싫어 하는 것만 예언해서
자기가 미워한다고 하면서
아합은 여호사밧의 강권에 못 이겨 그를 부릅니다.
이 와중에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철로 뿔을 만들어 이 뿔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할 것이라고 확언을 합니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람들은 미가야에게,
다른 선지자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
너도 그렇게 말하라고 주문합니다(12).
아합에게 온 미가야는 주문대로 처음에는
전쟁에 나가 승리를 얻으라고 말하지만
아합은 이것이 진정성이 없는 말임 알았습니다.
아합은 자기가 진리를 듣기를 거부하므로
미가야가 거짓을 말하는 줄 분별하였습니다.
결국 미가야는 이 전쟁에서 아합이 죽을 것을 예언하고,
아합 앞에 선 모든 거짓 선지자들이
사탄의 메신저들임을 고발합니다.
진리를 말한 선지자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는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아야 했고,
아합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물과 고생의 떡을 먹이라고 명하고
그를 옥에 가둡니다.
4.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합이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이 마음에 걸린 아합은
여호사밧을 이스라엘 왕으로 변장하게 하고
자기는 일반 군사들 속에 들어가서 전쟁을 하지만,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을 겨냥해 쏜 화살이 아니었지만,
그 화살에 맞았고 그것도 갑옷 이음새 부분의 가슴을 맞아
치명상을 입고 결국은 죽고 맙니다.
그가 병거에 흘린 피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개들이 핥았습니다.
이어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5.
여호사밧은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부친 아사의 길로 행했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실패도 기록합니다.
그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역대하는 그가 산당을 제거했다고 기록하지만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다(대하 17:6).
그는 아마도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들은 제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산당은 성전이 세워진 후로는 제거되었어야 했습니다.
이런 산당들이 백성들에게 여전히 편리했기에
여호사밧은 이것들을 제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실패였습니다.
여호사밧의 두 번째 실패는 불결한 동맹이었습니다.
그는 악한 아합과 화친하여 아합과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맞음으로써 유다 역사
최대의 위기를 초래하게 하였습니다(왕하 8:16~18; 대하 18:1).
셋째, 그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도 계속 화친하여
오빌에서 금을 실어오는 해상 무역을 구상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배를 파선케 하심으로 이 동맹무역을 막으셨습니다.
이후 아하시야는 재차 동업을 요청하지만 여호사밧은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세 가지 길로 행했는데
그것은 아합의 길, 이세벨의 길,
그리고 여로보암의 길로 모두 악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섬기고
바알을 섬김으로써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격동하였습니다.
6.
본문은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가 거룩할 것을 가르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거나 혹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는 없으나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불경건한 자들과
친밀한 사귐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은
막대한 영적 손해를 초래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7.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며 기도하지만,
결국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뜻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생각이 가득 차면 하나님의 뜻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8.
진리는 다수결이 아닙니다.
400명이 이구동성으로 승리를 외쳤어도
진리는 한 사람 미가야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숫자는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닙니다.
진리를 따르는 것은 때로는 고난을 초래합니다.
진리를 따르고 전한 미가야는 맞고 감옥에 갇혀
고생의 떡과 물을 먹었습니다.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은 고난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생명의 길이고 약속이 있는 길입니다.
이것들이 열왕기상의 교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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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10-24
-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상 22:18)
엘리야와 미가야를 포함하여 여러 무명의 선지자들까지.
아합은 생전에 많은 선지자들을 만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준엄하신 말씀으로 받지 않았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저 자신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만 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결과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타락한 모습으로
자신과 나라의 처지를 어렵게 만들었으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됐다.
아합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많이 듣기만 하고 알기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선포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듣고 읽었다 한들
그 모든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는다면, 또한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지식만 쌓고 정작 실제는 되지 않아
교만해 지고, 다른 이들을 정죄만 하게 되는
괴물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내 가운데도 나타나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오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묵상한다.
단지 지식용으로 말씀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말씀을 많이 아는 일에만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알고 있는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내게 필요하고,
언제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된다.
매순간 내가 듣고 보고 읽게되는 말씀에 순종하자.
그리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늘 나를 돌아보며 새롭게하는
겸손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자. -
- 이형원전도사 18-10-25
-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왕상22:14)"
미가야 선지자는 왕의 사신에게 왕에게 길하게 예언하기를 종용받는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일은 결코 예언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이
바로 선지자의 사명이었고 미가야는 그 일을 감당했다.
세상의 유혹이 있다해도 또 듣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해도
때로는 그 말하는 것으로 인해 어려움이 찾아온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야기 하게 하신 말씀을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세상의 유혹과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 온전한 말씀은
전해질 수 없을 것이다.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게 하시는 것을 말하며 또 그렇게 살아길 원한다.
특별히 성격적으로 사람들과의 불편함을 피하는 나에게 있어서
때로는 불편함이 있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되는 상황에서는
그 말씀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 사용하시길 원한다. 오늘 말씀의 미가야 처럼 담대하게
그리고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기 원한다.
그럼으로 주님의 뜻을 세상에 온전히 증거하는 주님의 종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