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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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수) 왕하1장_하나님을 경외하라
- 느헤미야강
- 2018-10-24
- 439 회
- 2 건
1.
아합은 정치적인 면에서 탁월한 왕이었습니다(왕상 22:39).
그러나 아합이 죽고 아하시야가 왕이 되자,
먼저 다윗 시대부터 종속되어있던 모압이 떨어져나갔습니다.
설상가상, 아하시야는 다락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되는데,
병이 낫지 않자 초조해졌습니다.
블레셋 지역 에그론을 다스린다고 알려진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과연 나을 병인지 그렇지 않을 병인지
사람을 보내서 물어보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가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물으러 보낸 신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파리의 신)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배운 게 그것이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 일로 인하여
아하시야가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는 말씀이
본문에는 3번 반복됩니다(3,6,16).
이 말을 전해들은 아하시야는
오십부장과 그 부대를 보내 엘리야를 부릅니다.
엘리야를 청하기 위해서 군대를 보낸 것은
엘리야를 무력으로 체포하려는 아하시야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엘리야는 교만한 오십부장과 오십명의 군인을
두 차례나 불로 멸합니다.
다만 세 번째로 보냄을 받은 오십부장이
하나님의 종 앞에 꿇어 엎드린 겸손은
그와 50인의 생명을 구하게 되고
엘리야는 아하시야에게 나아가 그의 아버지에게 했듯이
담대하게 그에게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하시야가 아들이 없이 죽으므로,
그의 형제요, 아합과 이세벨의 또 다른 아들인
여호람(요람)이 왕이 됩니다.
2.
아하시야가 다락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것은
은혜의 기회였습니다.
그는 엘리야나 미가야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을 불러
은혜를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인생에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나는 회개의 기회를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런 기회들을 알아차리고 사는가?
아하시야의 죄는 자기의 미래사를 우상에게 물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랬는가?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미래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사는가?
오늘날에도 신자라고 하는 자들이 점을 보고
미신을 의지하는 것은 얼마나 패역한 불신앙인가?
그것이 바로 아합과 아하시야의 죄였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문제가 터지면 엉뚱한 자리로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습니까?
3.
이 세상은 물론이거니와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농담과 우스개 소리들이 많아지는 듯합니다.
이 현상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 것을 보여줍니다.
두 명의 오십부장과 100여명의 군인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하는
마땅한 태도가 무엇인지를 도전합니다.
아하시야는 자기가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오라 가라 할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세 번째로 갔던 오십부장을 통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십시오.
은혜의 기회를 포착하고 사는 것이 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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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10-25
-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왕하 1:3)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다친 아하시야는
에그론의 신을 찾아가 병이 나을 것인지를 묻게 했다.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타락했던 왕,
아합의 아들이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주목하셨고
아하시야의 불신앙을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나의 일생을 책임지시고,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또 나의 상황과 형편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그럼에도 때때로 나는 이 아하시야의 모습과 같이
나의 필요를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찾고
나의 만족과 유익을 신앙 아닌 다른 곳에서 구할 때가 있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금껏 그래왔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또한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죄악 된 나의 본성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하여금 늘 믿음이 아닌, 죄악 된 모습으로 반응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하나님께 묻고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습관적으로 세상 것으로부터, 세상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죄악 된 모습임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의지적으로도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10-26
-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왕하1:3)"
살아가다보면 답답한 일이 찾아온다.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과 같은 순간도 찾아온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구해줄 그 무엇인가를 찾게된다.
그 무엇인가는 주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방법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상황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은 그 다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아하시야 왕 역시 난간에서 병이 찾아오면서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그 때 그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아닌 이방신을 먼저 찾게 된다.
그 일로 인해 그는 그 병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결국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찾음으로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에게 때로 이와 같은 답답한 상황이 펼쳐질 때 우린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사람의 위로도 방법도 그 무엇도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다. 잠시 잠깐 그 어려움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나의 삶 속에서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길 원한다.
참된 위로는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임을 인정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통해 고백하는 하나님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