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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목) 삼상25장_원수갚는것은 하나님께
- 느헤미야강
- 2018-08-23
- 489 회
- 2 건
삼상25장은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살려 준 두 이야기(24장과 26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세 장은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다윗은 비록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였지만,
왕다운 처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중,
그 보호를 받는 한 부유한 사람 가운데
나발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에게서 어떤 답례를 기대했다가 거절당하자,
예전의 그 답지 않게 마음이 상해서 복수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미련한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의 처신으로 중단됩니다.
아비가일은 남편과 그 집안에 복수를 하려고 오는
다윗을 만나 영감어린 말로 다윗을 설득했습니다.
그녀는 다윗이 이런 식으로 원수를 갚게 된다면
후일 다윗이 왕이 될 때 흠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 싸개에 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그녀의 신앙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이 지혜로운 여인의 말 한 마디는 다윗으로 하여금
복수의 칼을 거두게 하였고
그녀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32).
결국 나발은 이 소식을 알게 되자,
낙담하여 곧 죽게 되었고,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이 나발을 치셨다’고 기록합니다(38).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았다.
하나님의 주권을 그토록 확고하게 붙들었던
다윗이 왜 여기서는 이렇게 자기 스스로
복수의 칼을 휘두르면서 행동을 했을까요?
원수에게는 너그러울 수 있어도(기대가 없으므로),
우군에게는 기대하는 바가 있기에
너그러울 수 없는 것이 다윗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오랜 쫓김 속에서
그의 마음이 바닥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참을성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다윗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실패를
아비가일이란 여인을 통해서 막으셨습니다.
다윗의 복은 하나님께서 아비가일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그에게 허락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렇게 자기 인생에 오점을 남길만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참고.
25장 전체에서 1절이 가지고 있는 더 깊은 묵상은
댓글을 통해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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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18-08-24
- 사무엘이 죽으매
삼상25장
울고 싶은데 뺨 맞는다.
분노 조절장애.
무엇 하나 되는 일 없는 때.
본문이 다윗의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무엘이 죽었다(1절).
다윗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을 것 같다.
사무엘은 다윗이 광야의 도망자의 삶까지도
뒷받침 해주는 든든한 배경이요 보루였다.
어려운 광야여정도 견딜만한 명분과 이유가 있었다.
이 기간을 보내고 나면 사무엘이 기름부었듯이
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사무엘이 있었다.
자기집에 와서 왕이 될자라며 기름부어주던 사무엘.
그가 죽었다.
아무런 말없이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사무엘이 죽었다.
가족들이 있었지만 그의 왕으로의 기름부으심을 누가 믿어줄까.
사무엘이 죽었다.
다윗에게는 지금부터가 진짜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갈 때
나 역시 인간적인 많은 끈들을 붙들고 산다.
이것도 믿을만한 것이고 저것도 믿을만한 것인데
하나님이 나를 광야로 내 모시고
광야에서 살게 하실 때는 이렇듯
믿는 구석들을 단절시켜 가신다.
끊어내신다.
다윗에게 사무엘은 마지막 끊이요 인간적 파산선고이다.
당연히 하나님이 계시지만...
너무 울고 싶은데 그 마음 알아줄 사람도 없다.
그때 다윗의 뺨을 때려준 사람이 나발 이었다.
잘 됐다. 그렇잖아도 어디 분풀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나발 그는 부자였다.
광야 유랑길에서 그의 가축을 보호해준적이 있다.
나발의 양떼들이 털을 깎는다는 소식에
어느때보다 인심이 후한때이니
사람들을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나발은 다윗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요즘에 각기 주인에게서 떠나는 자가 많도다.”
다윗을 조롱하는 말이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말이었다.
그런데
사무엘이 죽기 전 다윗같으면 웃으며 넘길 수 있었지 않았을까.
삼24장에서 다윗은 엔게디 광야 어느 한 굴에서
우연히 들어온 사울도 살려주었다.
단지 왕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무엘이 죽기 전 그는 한없이 마음이 넓었다.
다윗이 달라졌다.
사무엘이 죽고나서.
아비가일이 아니었다면 나발을 죽일 수 있었다.
다윗처럼 울고 싶은데
뺨맞은 사람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
붙들고 있는 믿는 구석, 그 끈이 떨어졌을 때
그때부터가 진짜이지 싶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 같다.
그때부터가 진짜라고 말이다.
인간적인 모든 기댈 수 있을만한 것들이
끊어지고 사라졌을 때
그 때부터는 모든 소망 하나님께 두고
영적인 올인 상태에서 살라고 하시는 때이다.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이는 것이 맞는지.
다윗의 초대에 응한 아비가일이 잘한 것인지...
그것은 차차 더 깊이 묵상하기로 하되.
아비가일이 아니었더라면
다윗은 엄청난 죄를 지을 뻔 했다.
어제는 사울을 살려주었던 다윗이
오늘은 별 것 아닌 일에 사람을 죽이려 달려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25장은 다윗과 나발, 아비가일의 이야기속에
그 시작을 사무엘의 죽음으로 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의지하는 것 끊어져도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넘치는 하루되기를 소망한다. -
- john 18-08-24
-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삼상 25:1)
이스라엘의 영도자였던 사무엘이 죽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피 울었다고 했다.
의인의 죽음에는 소망이 있다고 하신 말씀처럼
그의 죽음은 영예로운 죽음이었다.
죽음은 곧 끝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도
이 죽음을 통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무엘의 죽음이 모든 이스라엘의 슬픔이었던 것을 볼 때
그의 삶은 전 이스라엘 가운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었던 것 같다.
오늘 사무엘의 죽음 이야기를 마주하며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묵상하게 된다.
나의 죽음은 과연 다른 이들에게 슬픔일까?
아니면 오히려 기쁨이 될까?
나의 죽음이 영예로운 죽음이 되려면
매일의 삶 속에, 매 순간의 삶 속에
아름다운 향기가 흘러가고
복 된 열매들이 맺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의 삶은 어떤한가를 돌아본다.
오늘 이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이라면
나는 아마도 선한 영향력을 더욱 끼치고자 힘쓸 것이다.
매 순간이 나에게 허락 된 마지막 순간이라는 마음으로 살 때
아름답고 복 된 인생이 되고,
사무엘과 같이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리라.
이러한 묵상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고,
또한 그로 인해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기를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