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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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목) 삼하6장_무지한 열심은 위험하다
- 느헤미야강
- 2018-09-06
- 456 회
- 2 건
1. 무지한 종교적 열심의 위험(1~11):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오랜 세월 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되어 있던 언약궤를
다윗 왕국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고 합니다.
이것은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삶에서 주변부로 벗어나버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그의 통치의 중심이요, 참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복된 행위였음은 분명했습니다.
많은 준비를 갖추고 궤를 운반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웃사가 갑작스럽게 소들이 뜀으로
흔들리는 수레에 실린 궤를 손으로 붙잡을 때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워오지 않고
그곳에 있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두어
그곳에 석 달을 또 방치하였습니다.
이 사고가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은
모세 율법에서 지시한대로 언약궤를 운반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린 것이었습니다.
수레에 실어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레위인들(고핫 자손)이
궤의 고리에 막대를 끼워서 들어 운반하게 되어있었고,
수레에 실어서도 안 되며,
물론 직접 손을 대서도 안 되었습니다(민4:5~15; 7:9).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지한 종교적 열심이 빚을 수 있는
위험한 결과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다윗의 동기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궤를 모셔오려고 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했기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기계적으로
그의 동기가 어떠하든지 조금이라도 말씀에 어긋나면
이렇게 사람을 치시는 분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거꾸로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동기가 순수하면 다 괜찮다는
우리의 나이브한 생각을 책망합니다.
여기서 다윗과 직접적으로는 웃사가 간과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자신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지킬 수 있다는 식의
매우 인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거룩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지키십니다.
교회의 영광도 하나님께서 스스로 지키십니다.
그 이름의 영광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에 대한 무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찬양하고
열심으로 봉사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사건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지한 종교적 열심이 낳을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해 주는 말씀입니다.
무지한 종교적 열심은 결국 쉽게 포기하게 만듭니다.
다윗은 사고가 일어나자 마음이 확 바뀌어서
궤를 가져오기를 포기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오벧에돔은 그 적임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시되,
그 복이 모두에게 현저하게 보이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삶의 축복을 보여주심으로써
다윗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아는 자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12~23):
오벧에돔의 집안에 임한 복에 대한 보고를 받은 다윗은
다시 하던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기쁨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수레에 싣지 않고 사람이 궤를 메었습니다(13).
다윗은 너무나 기뻐서 주체할 수 없어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해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을 축복하고
모든 백성에게 먹을 것을 주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다윗이 이제 모든 행사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축복하려고 하지만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의 몰이해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미갈은 다윗이 춤추는 것을 창 밖으로 보고는
그를 업신여기는 마음이 일었고(16)
다윗을 보자 왕이 체신없이 행동한 것을
모욕적으로 몰아세웠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말대로
미갈에게 자식을 주시지 않음으로
사울의 대를 끊으셨고
다윗은 자신이 비록 천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뛰놀리라고 말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기쁨을 드러내는 일을
그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자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 사이의
갭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미갈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서
도무지 다윗의 기쁨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몰이해와 업신여김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고 살겠다는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자의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세상의 몰이해와 비판 속에서
우리가 주저없이 우리의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더 없이 복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몰이해와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으며
이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인 것입니다.
나는 이런 몰이해, 업신여김을 받아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길 것인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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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9-06
-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7)
여호와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올 때
다윗은 그것을 율법대로 운반하지 않았다.
아마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큰 나머지
궤를 모셔오는 것에만 집중하여 율례와 법도를
간과했던 탓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는
나 개인의 열심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라는 명목으로
수없이 무시되는 절차와 과정들,
또한 나는 이 거룩한 일을 행하고 있음으로
어떤 모양이든 어떤 방법이든 이해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거짓된 방법을 사용하거나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영적 교만.
말씀을 통해 깨닫고 돌이켜 보게 되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나의 열심이나 방법을
과연 주님께서도 인정하시고 옳다 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열정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하는 처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나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을 핑계로
하나님의 뜻과 방법보다는 나의 그것대로 행해 왔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이 세상에 거하는 동안, 또한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행하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 행하는 것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묵상하며
이후로 나의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분의 뜻을 이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9-07
-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삼하6장14절)"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 힘을 다하여 춤을 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기쁨이 가득했고 찬양할 때 마음 속에 기쁨이 넘쳤으며 기도할 때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또한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그 기쁨이 가득한가?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여전히 내 마음 속에
하나님으로 인해 생기는 기쁨은 있겠지만 그것이 표출되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찬양을 하게 될 때 주님 전에 나아가게 될 때 주님 앞에 예배할 때 내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길
원한다. 그저 사역자니까 마지못해 참석하고 마지 못해 은혜 받은 척하고 누군가가 들으라고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내 안에 있기를 원한다.
다윗이 언약궤가 들어옴으로 기뻐 춤췄던 것 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마다 나에게도 이러한 기쁨이
나타날 수 있는 자가 되길 원한다.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말씀을 전하는 일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일이 되지 않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어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