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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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목) 삼상13장_핑계는 없다
- 느헤미야강
- 2018-08-09
- 493 회
- 2 건
삼상13장 하나님 말씀을 범한 것에 대한 핑계는 없다
본문은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가 40세였다고 말해줍니다.
그의 통치 2년만에 사울은 자신의 교만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군사를 3000명을 모아서 자신이 2000명을 데리고 믹마스에,
요나단이 1000명을 데리고 기브아에 진을 쳤는데,
요나단이 게바의 블레셋 수비대를 급습함으로써 전과를 올리자
온 이스라엘이 흥분해서 길갈로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블레셋도 전쟁을 하기 위해서 믹마스에 전열을 정비했는데,
이들의 규모는 병거 3만에 마병 6천, 이외에 군사는 해변에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굴, 수풀, 바위 틈, 은밀한 곳, 웅덩이에 숨었고,
더러는 도망했으며 남은 모든 자들도 떨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이제 왕 사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그에게는 이 전쟁과 관련하여 사무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10:8).
그것은 사무엘이 7일 안에 와서 제사를 드릴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승리의 보장을 듣고 나가서 싸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7일이 지났지만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았고 사울은 급기야 자신이 제사를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번제를 마쳤을 때,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사무엘은 심하게 책망 했고 하나님께서 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해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이 무서운 말을 마치고 기브 아로 떠났고
사울과 그를 따르는 약600명의 군대는 길갈에 남았습니다.
숫자도 숫자지만, 이스라엘 군은 말이 군대지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손 에 칼이나 창이 없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동안 이스라엘이 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철공을 없 애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기구를 들고 전쟁을 감당해 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요?
사울을 이해하는 것은 쉽습니다.
군대는 적진 앞에서 무너지고 있고,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서는 제사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나 분명하게 이 문제를 책망합 니다.
제사는 왕의 권한이 아닙니다.
왕은 왕에게 주어진(하나님으로부 터) 책무와 권한만을 가질 뿐입니다.
후일에 유다의 웃시야 왕은 교만해져서 결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자 기가 제사까지 드리려고 하다가 문둥병이 들어
남은 평생을 불행하게 살 았습니다.
아무리 지위와 권한이 높아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신 분임을 알고 가야 합니다.
순간 잊어버리면 그는 바로 넘어지게 됩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분량을 알고 그 선을 지키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 다.
교만해지면서 자신의 분량을 넘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죄인의 성향입니다.
사울은 우리에게 무섭게 교훈해줍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이라고 그는 가 르쳐줍니다.
어떤 조급함도, 어떤 상황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있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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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8-10
-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삼상 13:9)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어마어마한 그들의 군사력 앞에
이스라엘은 두려워 떨며 피하기에 급급했다.
이에 마음이 조급해진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무엘 대신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오늘날 같으면 ‘누가 번제를 드리든 큰 문제가 있을까?’하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어째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일은
사무엘에게 주신, 사무엘이 맡은 고유의 권한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을 사울은
조급함과 불신, 두려움과 염려로 말미암아 자신의 열심을 앞세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이유가 있을 텐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이유가 있을 텐데,
사울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이 성과를 내고 자신의 치적을 세우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이러한 실수를 범했다.
본문을 통해 오늘 나의 모습을 또한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보며
어떤 때는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족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인간적인 조급함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나의 열심을 앞세울 때도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로인해 하나님께 그렇게 하신 이유들을 발견하게 된다.
늘 그래왔듯 ‘허락하심이 최선’인 것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나에게 허락된 자리가 어디이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 얼마만큼이든
주님보다 나를 앞세우지 않고, 허락하신 만큼의 사명을 다하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8-10
-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삼상13:12)"
사울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본인이 직접 번제를 드렸다.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약속 했던 사무엘은 오지 않고 또 백성
들이 흩어지자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민족적 어려움을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해결하려는 간절한 마음도 어쩌면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볼 수
도 있다.
하지만 이일로 인해 사울은 하나님께 더이상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새로운 왕이 세워질 것 임을 듣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댓가였다.
상황 속에 빠지게 되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됨을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없이는 어렵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해서 내스스로 해결하려는 모습보다 때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