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4.12-출32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4-12
  • 514 회
  • 3 건
출애굽기 32장
 
출애굽기 32장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기에 턱없이 부족한 이스라 엘의 큰 죄에 대한 기록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 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독대하기 위해 40주야 (24:18)를 떠나 있는 동안,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 딤을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사단을 내고 맙니다.

1절에서 6절까지는 사건의 발단과 경과에 대한 기록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지도자인 모세를 통해 보고 경험 하던 출애굽 이스라엘에게 40일간의 지도자의 부재의 경험은 가시적 인 신의 임재의 부재의 경험이었고 그것을 그들은 참아내지 못했습니 다. 아론은 이 문제에 대한 임기응변으로 백성에게 그 귀에서 금고리 를 빼어 바치라고 하고 그것으로 부어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가시적 신을 창출해 내고 심지어 축일을 선포하여 온 백성 이 불안감을 떨쳐 버리고 축제를 벌입니다. 여기까지는 사회적 문제를 미연에 잘 막은 사례로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인 선례가 되고 맙니다.  
7절부터 14절까지는 진노하신 하나님은 그 즉시 그 백성, 부패하고, 길을 속히 떠났으며, 목이 뻣뻣한 백성을 진멸하고 모세 한 사람으로 부터 큰 나라를 이루는 일을 새로 시작하실 의향을 비추십니다. 그러 나 산 아래에서 일어난 일의 심각성을 아직 모르는 모세는 언약을 상 기시키는 등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서 당장의 화를 모면하 게 합니다. 그러나 14절에서 19절까지 시내산을 내려와 현장을 목격한 모세는 하 나님이 주신 돌판을 던져 깨뜨리며 크게 노하는 반응을 할 뿐 아니라 20절에서 29절까지 이 문제가 하나님앞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닫고 그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사르고, 부수고, 가루를 내어, 물 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합니다. 그만큼 모세는 송아지를 보자 마자 이 문제가 얼마나 하나님앞에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모세는 레위지파를 통해 삼천명을 죽이는 것을 통해 이 잘 못의 심각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하나님의 노한 감정을 달래고자 합니 다. 
29절에서 32절의 모세의 백성을 향한 말과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아 뢰는 말을 종합해 볼 때 이 정도 선에서 하나님께서 속죄, 사죄해 주 실 것을 기대한 듯 합니다. 33절에서 35절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단호함이 그대로 배여 납니다. 심지어 모세가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지 않으시려거든 “주께서 기 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소서(32절)”라고 강경하게 나 올지라도, 하나님은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고 반응하시면서 그들의 죄를 보응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역병으로 치시는 것으로 본문이 끝이 납니다.

백성이 요구했고 아론이 반응하여 만들었던 송아지는 어떤 의미를 가 졌던 것이기에 하나님은 매우 심각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계신 것일까요? 
본문에서 금송아지가 보여주는 세 가지 불안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 니다. 
첫째는 인도에 대한 불안함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찾는 백성들의 아우성속에서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라 라고 하시는 하나님 의 말씀속에서 우리는 이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과 거취에 늘 강박적으 로 매달리고 있는 자들임을 보게 됩니다. 결국 이 인도에 대한 불안함 이 자신을 위한 대안과 대책을 찾게 만드는 조급증으로 작용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리더 혹은 신의 임재에 대한 불안함입니다. 그들은 잠시의 리더의 부재, 혹은 신의 부재를 참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시적인 형태로 지도자 혹은 신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세 번째로 아론이 심지어 불에 넣으니 자동적으로 금송아지가 튀어 나 오더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 이것이 그들이 이미 익숙해 하던 과거의 종교,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과거로의 회귀강박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시점에서 자신들의 안정과 평정심을 해치는 상황이 오자 금새 그들은 과거의 경험을 소추 하여 그들의 심령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는 이들 역시 이런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불안함은 실상은 자신의 진로 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늘 사모하는 것, 그것도 가시적인 형태로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 고 싶어하는 열정은 사실은 하나님의 부재,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 하 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늘 유목적인 새로운 세계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위한 모험을 두려워 하여 익숙한 것, 우리에게 편안함과 아련한 추억을 가져다 줄 옛날의 방식으로 귀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금송아지이며 이 것에 대해 하나님이 진저리칠 만큼 싫어 하신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 달아야 합니다. 이민자의 삶을 산다는 것 역시 정체성과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 안정 에 대한 불안함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새길 수 있기를 소망합 니다.
    • 다니엘 18-04-12
      1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구원의 사건,
      홍해 사건, 만나 사건, 반석의 물 사건,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기적 경험.
      무엇이 은혜 대신 우상 숭배의 범죄에 빠져들게 했을까?

      40일 동안 산에 오른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의심했다.
      모세와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었다.
      의심을 불평이 되고 불평은 거센 항의가 되었다.
      하나님의 때가 더디다고 늦다고 생각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이 모세에게 요청했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 만나면 두려우니 대신 올라가록.
      그러니 하나님께서 말씀을 다 마시고 내려가라고 하실때까지는
      내려올 수 없는 거였다.
      설령 모세가 하나님앞에서 죽었다고 해도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였다.
      하나님 보다 내 판단력을 더 신뢰할 때 죄가 시작된다.
      시간 때문에 초조해하고 안달하지 말아야지.
      세월을 살면서 배우는 것은 신앙은 인내다 하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이 그 시간을 결정하고
      자기들의 방식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데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불신앙임을 깨닫는다.
      그 결과는 하나님 대신 다른 믿을만한 것을 찾아야 하니
      우상 숭배일 수 밖에 없겠다 싶다.

      2
      하나님의 때가 더디다는 사실 때문에 모였다.
      하나님의 때는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고 언제나 정확하다.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는때가 많다.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 되어 모이고 회의하는 것에는
      신앙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음을 발견한다.

      의심이 불평이 되고, 불평이 모이게 했다.
      긴 회의 끝에 내린 결론, 조치를 취하자였다.
      이 조치가 금송아지 우상숭배였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 들여다 보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보인다.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
      애굽에서 인도해 낸 사람이 모세라했으니 틀림없이 불신앙이다.

      3.
      모세가 인도했으니 모세 책임이다.
      아니면 네가 책임져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저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종종 들어보는 말이다.
      아론의 굴복.
      지도자의 죄이다.
      진리의 기준을 따르는 대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것.
      아론은 옳은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것이 죄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주권적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교회를 다스리는게 되는것
      이것이 교회의 타락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아니라,
      뒤틀린 하나님, 자기들이 원하는 하나님이 필요했다.
      나는 인도할 신들,
      내가 원하는 실들이 필요했다.
      자기들의 하나님을 자기들의 개념과 기호에 맞추어 재구성하는 것.
      이것이 금송아지 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하나님이 좋은 거다.
      간섭하지 않는 신, 요구하지 않는 신,
      공의가 아니라 사랑만 많은 신을 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인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에게 유익한 신이다.
      그들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4.
      “금 귀고리를 다 빼서 가져오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애굽사람들에게서 요구하여 받게 하신 것이자, 애굽에서 무임으로 노종한 대가를 주신 거였다.
      이것은 성막을 위하여 쓰여질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으로 우상을 만드는데 드렸다.
      그들 중에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멋지게 만들었을거다.
      하나님의 명하신 성막을 지어야 할 재능을 지금 우상을 만드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죄이다.

      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주신 것들인데
      자기 유익을 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종교적 추구와 성향을 위해서
      쓰는 것이 죄이다.
      돈, 건강, 시간, 여유, 모든 것이 그렇다.

      5.
      죄는 언제나 예배를 무너뜨린다.
      “내일은 여호와의 절기다.”
      백성들은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번제와 화목제를 금송아지 앞에서 드렸다.
      앉아서 먹고 마셨다.
      백성들은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아론은 “이는 여호와의 절기다”라고 했다.
      이도 저도 다 하나님이다.
      혼합주의는 편하다.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도
      “우린 지금 우상을 섬기는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닐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심중에 없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 탐심의 만족만이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정하신 예배의 방식에는 관심이 없이,
      내가 더 짜릿하게 느끼고 감정이 움직이고 하는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를 기준으로 예배를 조정하는 것.
      이것이 범죄이고 타락이 아닐까 싶다.

      6.
      내가 저지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들이 했던 그 일이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복음이다. 그리스도이다.
      그들의 범죄가 일어나기도 전에 성막을 지으라 하셨다.
      내가 죄를 알기도 전에 그리스도를 준비하셨다.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준 성막.
      죄인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갈 수 있는 보여준 그리스도.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이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은혜를 받지만 넘어지고, 결심을 하지만 실패하는 내가
      넘어지지 않으시고 실패하지 않으시며 완벽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범죄하기 전에 모든 일을 완벽하게 준비하셨고 제공하신 분.
      창세 전에,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범죄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복음을 준비하신 분.
      이것이 은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 이형원전도사 18-04-13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32:4)

      그토록 많은 기적으로 출애굽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또 출애굽 이후에도 시시각각 놀라운 기적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던 하나님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었지만 모세가 자리를 비우자 그들에게는 다시
      불안한 마음이 찾아왔다.

      가시적으로 의지할 곳이 사라지자 이제 자신이 볼 수 있는
      우상을 만들어 그 마음에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아론은 이러한 백성의 요구에 응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모습은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웃 민족들을 통해
      보아왔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 처럼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함으로써
      안정을 추구하자고 했던 것이다.

      이는 심각한 죄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
      모세의 기도로 그들은 간신히 멸망당함은 면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우리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이 이야기하는 기준에 나를 맞춰간다.
      그리고 조금 이라도 그것에 뒤떨어졌을 때 불안해 하고
      잘 못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내 안의 또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세상의 관습과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을 때에만
      우리는 세상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도 생명력을
      갖고 선과 악을 구분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 할 수 있다.

      언제나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으며 살아가는 자가 아닌
      비록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john 18-04-16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출 32: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내려옴이 더딘 것을 보고 불신에 휩싸여 우상을 만들었다.
      계속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눈앞에서 경험했음에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고, 자신들의 기준이나 판단과 다름으로 인해
      또 다시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이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나 역시도 매일의 삶 가운데,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내 목표대로 되지 않을 때,
      또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디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을 불신하며 내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고자 애쓰며 살아왔음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내가 무리하게 진행하고, 억지로라도 이루려 했던 일들은 언제나 선한 열매가 맺혀지지 않았다.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이해할 수 없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민족, 이 이스라엘의 모습이 오늘 내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나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게 느껴질 때
      더 이상 인간적인 방법과 계산을 동원하여 내 삶에 다른 하나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일하실 하나님의 역사와 나를 위하여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실을 기대함으로
      선한 열매를 맞보며 하나님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