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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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출애굽기 3장 통독 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3-09
  • 514 회
  • 3 건
3장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은 낮추신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시간은 모세의 육신을 죽이는 시간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키는 시간이었습니다. 
양치는 직업은 애굽 사람들에게는 천시를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40년이 필요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육신적 생각과 지혜를 죽이기 위해서 
그를 애굽 사람들이 가증히 여기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40년동안 애굽의 교육 영향받았을터이니 그 때를 빼는데에도 40년은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는데에도 그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람을 이렇게 준비시키십니다. 
인간의 시간 계산으로 40년은 너무나 오랜 세월입니다. 
나도 모르는 긴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는 하나님의 산 호렙이 나옵니다(1). 
호렙은 산맥의 이름이고 시내산은 산맥의 한 정상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시 떨기 나무 한 가운데이 거하셨습니다.
 거하시다의 히브리 단어는 “샤칸” 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는 “쉐키나” 와 같은 어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모세는 보내심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이사야나 다른 모든 선지자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선재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 임했으나 떨기나무는 타지 않았습니다. 
가시는 저주를 상징하는데 저주의 자리에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가시는 모세이고 곧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그 가시 떨기 나무에 거하셨던(샤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고 거하실 것입니다. 

40년 전 모세는 육신의 힘으로 나아갔을 때(출2:11) 
사역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었습니다. 
이것은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확인됩니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행7:25).”
이런 자신감은 지난 40년의 양치기 삶을 통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 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한 것은 당연한 모습입니다(6).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을 보고 만나던 자가 되었습니다. 
죄인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나중에는 경외함과 함께 하나님을 친밀히 만나게 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자요(신34:10).”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것이 바로‘언약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6). 
하나님은 그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셔서 자기 백성을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신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14).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그 근심을 아십니다(7~10).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이보다 확실한 약속은 없습니다. 
이 약속이 있다면 하지 못할 일이 없고, 
넘지 못할 산도 없으며, 
견디지 못할 고난 또한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모세의 삶 끝까지 이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시다(16~22). 
하나님은 될 일과 할 일을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모세가 할 일은 순종이었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46: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육신의 힘과 지혜로 행하지 않고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시려는 의도입니다(고후4:7).
 또 하나님은 보시고 듣고 아십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고달플 때가 있고 너무 오래간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약속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임마누엘로 오실 때 
이 약속은 모든 신자들에게 성취되었습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신자와 함께 하십니다.
    • 야긴과보아스 18-03-09
      성실이 일상이 되지 않게 하는 것
      소명?
      성직자에게만 소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직업이 사실상 소명이다.
      인간에게 소명의 순간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직업으로 처음 부르심을 받는 순간
      하나의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인도되는 순간은
      우리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들이다.

      40년 애굽 궁중 생활
      한 순간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를 자임하다가 거절당한 후
      40년 양치는 목자의 삶을 살았다.
      모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명을 받았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공동적인 경험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들의 특징은 일상생활에서 성실했다는 것이다.
      성공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실패 많은 삶에도 성실했다.

      베드로가 밤새워 그물을 내렸으나 빈 그물을 거둘 때
      역시 성실과 실패가 마주할때였다.
      열 두 제자 중 누구도 친구들과 한가롭게 어울리다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없다.
      모세도 생각해보니 그랬다.
      소명이 오기전까지 맡겨진 그 일에 성실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더니”(1절)

      본문이 주는 도전은 우리 삶에 아직 소명이 없다고 여길지라도
      주께서 인도하신 나의 미디안에서,
      나의 갈릴리에서 성실하게 날마다 사는 것이다.
      어제 성실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말이다.

      그러나 본문은 나에게 성실함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신다.
      성실함은 소위 일상성에 빠져 버린나머지
      영적인 감각에 무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성실함으로 살되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깨닫고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아 차리는 민감성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깨어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때에도
      노아이 홍수때에도 깨어있지 않은 까닭이었다.

      모세가 참 대단하다는 것은
      그는 일상성에 성실했지만 일상성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적잖이 실랑이도 있었으나
      적어도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고자 신호를 보내실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깨어 있는 영성을 보존하고 있었다.
      모세를 존경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에 진지하게 응답했다.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순간 내가 서있는 그 땅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이 시작되는 땅이 될 거라는 거.
      거기서부터 나의 출애굽이 시작되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 john 18-03-09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1)

      애굽의 왕실에서 40년을 살았던 모세는 넘치는 자신감과 열정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던 그는 이전의 패기는 온데간데없는 시골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쓰시고자 당신 앞으로 인도하시는데.

      미디안에서의 40년은 모세가 이전까지 쌓아온 경험, 지식, 실력, 확신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시기가 됐을 것이다.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 모세에게 40년 이라는 훈련의 시간을 주셨던 것이다.
      모세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 열정도 품위도 자존감도 다 사라져버린 상실의 시기였겠지만
      하나님께는 그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시기 위한 제련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렇게 우리를 낮추시며 시험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그렇게 당신께서 쓰시기에 가장 좋은 상태로 우리를 다듬으셔서 우리를 사용하신다.
      그것이 어떠한 모습이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길을 가게 하시든, 어떤 상황을 허락하시든
      그것이 결국은 나를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것이 곧 은혜임을 기억하며 감사함과 기대함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준비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3-10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한 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혼란 속에 빠진다. 분명 주님의 뜻으로 알고 행했는데 그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음에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의심하게 되고 갈 길을 잃어버리고 한다.

      모세도 처음에 민족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궁으로 보내신 뜻이라 확신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의 삶의 그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지도자로 나섰지만 그것은 곧 거절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모세는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민족이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 갔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모세를 부름으로 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번에는 모세가 자처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나아가게 되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장 주님의 뜻을 다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너무 섭부르게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던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음으로 인해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던 부분까지도 하나님 앞에 맡길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바울은 처음에 유대인을 전도하기 위하여 회당으로 나갔지만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자는 오히려 이방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의 전도자로써 그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
      유대인을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것 만을 고집했다면 결코 이방인의 사역자로 세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가지길 원한다.
      때로 내 뜻대로 일이 잘 안된다 할지라도.. 때로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던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를 향하신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