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3.17-출애굽기 10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3-17
- 530 회
- 2 건
10장 고통의 통로가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라
본문에는 여덟번째 메뚜기 재앙과 아홉번째 흑암 재앙이 기록되어 있습니 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 재앙들을 주시는 목적을 다시 말씀하시는데
애굽 의 바로와 그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자손들에게
당신을 알리시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2).
하나님은 어떤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경험하게 하고, 구별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알게 하시려는 것과
택한 백성에게 궁극적으로 구별하여 구원하실 것임을 알리시는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고집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메뚜기 재앙의 경고 앞에서 신하들은“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느 냐?”고 물을 지경이 되었습니다(7).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시려는 목적이 드러난 것입니다.
모세를 불러 새삼스럽게 누가 희생을 드리러 갈 것인지를 묻는 바로의 마 음은
여전히 참된 회개에서는 거리가 멉니다(8).
모든 백성이 다 가야 한 다는 모세의 대답에 바로는 남자 어른들만 가도록 허락했습니다(11).
인질을 잡아두어 결국에는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아무 농작물에 피해를 보지 않은 고센 땅의 식물을 취하 겠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구석으로 몰려도 고집스럽게 머리를 굴리는 존재입니다.
메뚜기떼가 일어나 모든 푸른 식물을 다 먹어버리자,
바로는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 다시 한 번 회개의 표시를 보이며
제발 구하여 메뚜기를 떠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16~1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로에게 신이 될 것이라고 하신 대로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 바로로 인하여 아홉번째 흑암 재앙이 임했습니다.
고센 땅을 제외하고 삼일 동안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흑암이 온 애굽 에 임했습니다(22~23).
태양을 숭배하고 바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믿던 애굽 사람들에게,
신은 태양이 아니라 태양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로가 이번에는 애들을 데리고 가되, 가축들만 놓고 가서 희생을 드리라고 하지만,
모세가 거부하자 바로는 모세를 쫓아냄으로써 마지막 선을 넘고 맙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녕 죽게 될 자는 바로 자신입니다(28).
바로의 고집은 온 애굽을 고통 가운데로 몰아넣었습니다.
그의 신하들 가운데서 그랬듯이,
이 연속적인 재앙들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고집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불순종과 고집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나와 관련된 가족들이나
기타 여러 사람들에게까지도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나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내가 속한 가정과 조직에 임하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당신이 반응하고 있다면 그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강퍅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선포되고 들려져도 들을 수 없고 순종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듣고 있는가?
그렇다면 믿음의 순종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 이전글 3.19/20 출11,12장 통독가이드 18.03.19
- 다음글 3.16-출애굽기 9장 통독 가이드 18.03.16
-
- 이형원전도사 18-03-18
-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출10:2)
하나님께서는 일곱번째 재앙까지 경험했으나 여전히 그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바로에게 다시 한 번 나아가라고
모세에게 말씀한다.
그리고 바로와 그의 신하가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또한 더 나아가서 애굽에서 행한
표징을 모세의 자손가 귀에 전하기 위함임을 알려준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여러번 이야기 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보내면서 그 분의
분명하신 뜻을 말씀해 주고 계신다.
처음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확신이 점점 희미해 지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우리가 지쳐 있을 때 혹은 그 말씀이 희미해 질 때마다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신다.
그리고 그 말씀은 더욱 확장되어 더 큰 하나님의 뜻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소명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먼 곳까지 나를 보내시며 주셨던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본다.
주변의 상황과 환경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알고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 가운데서도 주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03-18
-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출 10:11a)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출 11:24)
계속되는 재앙으로 인해 고대 근동의 맹주였던 애굽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흔들리다 못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놓이기 되었다(7절).
그럼에도 바로는 여전히 그 마음이 완악하여서 도무지 자신의 고집을 꺾을 줄을 몰랐다.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도 ‘이것만은 안 돼, 저것만은 안 돼…’ 끝까지 내려놓지 못했다.
오늘 이 바로의 모습이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진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준엄하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자신의 무력함이 여실히 드러남에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한 가지, 고집과 아집으로 나타나는 그의 자아.
이쯤 되면 이제는 항복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엎드러질 때가 되었는데
바로는 계속해서 타협을 시도하며 자녀들은 두고 가라, 소유는 두고 가라… 끝내 자아의 요구를 포기하지 못했다.
이러한 바로의 모습을 보며 답답해하던 순간, 문득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하고 어떻게든 타협해보려 하는 나의 무지함과 연약함이.
‘하나님, 이것만은 안 돼요. 하나님, 이것만은 좀 허락해 주세요. 하나님, 이것 없으면 저 끝이에요.’
이미 내려진 결론 앞에, 나는 여전히 모르는 체하며 어떻게든 내 것을 결코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의 바로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나의 완악함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1%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한다.
당장은 안 하면 죽을 것 같고,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끝끝내 내려놓지 못할 것 같은 그 마지막 한가지까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 때 바로 주님이면 충분하고, 주님으로 만족한 삶이 내 안에 시작될 것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