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3.22 - 출14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3-22
- 609 회
- 2 건
14장 벼랑 끝에 세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깊은 배려로 인도하셨지만, 또한 벼랑으로 데리 고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피할 곳이 없는 막힌 곳으로 이끄셨 습니다(3). 이는 바로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다시 강퍅해져 이스라엘을 추적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 획대로 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눈을 들어 바로와 그 군대를 보았습니다 (10). 육신의 눈은 앞에 있는 대적 밖에 보지 못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 는 자가 가지게 되는 정상적 반응은 두려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래서 부 르짖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적 기도 즉, 믿음의 기도는 아니었습니 다.
이런 기도가 얼마든지 우리의 삶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두려움 중에 드리는 우 리의 기도는 참으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인가?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신뢰와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인가?
그들은 부르짖은 후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11~12). 이것이 앞선 그들의 부르짖음이 헛된 것이요, 불신의 부르짖음에 불과했 음을 보여줍니다. 기도의 삶이 증명되는 것은 바로 이후의 태도입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수없이 반복되게 될 불신앙의 첫번째 반응이었습니다. 모세를 향한 원망은 사실상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습니 다. 단지, 하나님을 상대로 직접 원망할 용기가 없기에 인간 모세를 대적 하여 원망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라고 백성들에게 확신있는 선 언을 합니다(13~14). 여기서 보라는 말은 믿음의 눈을 들어서 애굽 군대 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게 될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의 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히11;29절은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 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믿음의 태도는 어디서 왔는가? 2~4절에 말씀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의 태도는 믿음으로부터 나오 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믿는 것에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모세에게‘왜 부르짖느냐’고 하십니다(15). 이 말은 믿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서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15b~16). 먼저 백성을 바다 가운데로 나아가라고 명하고, 둘째로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내밀어 갈라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순종이 먼저입니다. 먼저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백성들이 믿음으로 발걸음을 바다로 향하여 옮길 때에 바다는 갈 라지기 시작했고, (영화에서 본 것처럼) 한 번에 다 갈라졌다기 보다는 이 스라엘 백성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바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서 계속 갈라졌던 것 같습니다(A. Pink). 그래야 이것이 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건넜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설명을 입증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사람을 가르는 역할을 하였습 니다(19~20). 이 기둥이 백성들의 앞서 행하다가 뒤로 물러가 양 진영의 사이에 서서 자기 백성을 보호할 뿐 아니라 빛과 어둠을 나누었듯이, 성 령님의 존재도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가르는 역할을 하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모세는 순종하였고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21~29). 바로와 그 군대가 수장된 것은 신자들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믿음 없이 시도하려고 하는 자들은 다 실패하고 망하게 된다 는 것을 보여줍니다. 히11: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 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를 보았던 그 눈으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고, 자신들의 큰 구원을 보았습니다(30~31). 그 결과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모세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기적을 보고 믿는 것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이는 효력이 지속적일 수 없습니다. 참 신앙의 변화는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으 로 만나는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목적으로 우리 인생을 벼랑 끝에 데리고 가서 세 우시기도 하십니다. 벼랑 끝에 설 때 나의 반응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 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모세처럼 믿음으로 반 응하는가?
또 본문은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환난 중에 드리는 나의 기도는 참 믿음의 기도였는가?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 일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이 루어주시도록 구하는가 아니면 불평하고 원망하며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은 채 부르짖는가? 또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능력, 응답과 같은 것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 하게 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 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귀는 견고한 신앙으로 가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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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3-23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어찌보면 순종하기 쉬운 말씀 같지만
또 어찌보면 우리가 따르기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다.
삶의 문제가 나에게 닥쳐왔을 때
뒤에는 애굽의 군사와 앞에는 홍해가 나를
가로막는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가만히 있기란 쉽지 않은 명령이다.
애굽에 투항을 해서 살길을 모색해 보든
바다에 배를 띄워 건너갈 방법을 간구하든
그저 손 놓고 닥쳐올 위기를 바라만 보고 있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삶 속에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이 앞서 나갈 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가만히 있어 하나님을 기다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
능력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신다.
나의 삶 속에도 항상 위기는 찾아온다.
그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이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찾아온 위기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간의 방법을 찾아볼 것인가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뜻을 바라볼 것인가
우리 신앙의 깊이가 이 곳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언제나 세상과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역사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03-23
-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4:12)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몸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에 나타난 위기 앞에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다.
가까스로 자유를 얻은 줄 알았는데 또다시 어려움을 만나니 당황하기도 했겠지만,
장자의 죽음을 면하게 하신 그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백성들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어설프고 나약하며, 심지어는 배은망덕하기까지 하다.
이토록 놀라운 은혜를 목도했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불신할 수 있는지.
하지만 오늘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또다시 나의 믿음 없음을 발견한다.
나 역시도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 섭리를 경험하지만
여전히 문제 앞에서, 어려움 앞에서, 위기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기 때문이다.
구원의 은혜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참으로 가슴 벅찬 은혜인데,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어렵고 고단하게 느껴질 때면
‘차라리 이 길을 몰랐더라면, 세상 사람들처럼 편하게 살았더라면…’하고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을 알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은혜인가를 망각한 채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에게도
이스라엘에게 보이셨던 놀라운 구원을 오늘 동일하게 보이실 줄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상황과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