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4(월) 나는 보았노라, 요한복음 9;19-25
요한복음 9장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 눈을 뜨게 되는 놀라운 치유 사건을 다룹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치유 기적을 넘어,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깊은 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9:19–25는 그 치유된 사람이 유대인 지도자들 앞에서 신문을 받는 장면입니다. 지도자들은 이 기적이 정말로 일어난 것이 맞는지, 또 이를 행한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려 합니다. 그들은 맹인의 부모를 불러 질문하고, 다시 본인을 불러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캐묻습니다. 이들은 기적의 사실보다, 예수가 메시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19–20절: 유대인들은 그의 부모에게 “이 자가 너희 아들이냐? 그가 맹인으로 났다는데, 어떻게 지금은 본다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부모는 “맹인으로 난 것은 확실하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답합니다. 이미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는 출교시키겠다고 결의했기 때문입니다.
21–23절: 부모는 두려움 속에 “그에게 물어보라, 장성했으니 자기 일을 말할 것이다”라고 답합니다.
24–25절: 유대인들은 다시 그를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이 사람(예수)은 죄인이다”라고 하자, 그는 유명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이 본문은 단지 한 사람의 눈이 떠졌다는 사실을 넘어서, 영적인 눈뜸, 즉 예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의 이야기입니다. 맹인은 단순한 체험을 말할 뿐이지만, 그의 말에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신학자도 아니고, 교리를 아는 자도 아니었지만, 자신이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종교적 틀과 권위 속에 갇혀 있어서, 분명한 기적 앞에서도 마음이 닫혀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려 하고, 예수를 죄인이라고 단정짓습니다. 반면, 치유받은 자는 단순한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점점 더 예수님을 믿는 자로 성장해갑니다(이후 절에서는 예수께 경배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오늘 묵상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체험적 신앙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나는 주님을 통해 이렇게 변화되었다”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우리는 두려움보다 진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부모는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며 진리를 말하지 못했지만, 치유받은 자는 담대하게 자신의 체험을 증언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 삶을 어떻게 바꾸셨는지를 분명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치유에 대한 공을 돌렸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인정했습니다.
셋째, 믿음은 점진적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 맹인은 처음엔 예수를 "그 사람"이라 부르다가(11절), “선지자”라고 말하고(17절), 결국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게 됩니다(38절).
우리도 신앙의 길을 걸으며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을 바꾸셨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고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모든 것을 이해한 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에 대한 감사와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진리를 말해야 할 때, 누가 믿음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을 때, 주변의 종교 지도자들은 믿기보다는 의심했고, 확인보다는 추궁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그 부모를 불러, "이 아이가 너희 아들이냐? 그가 맹인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금은 본다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 순간, 부모는 확실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아들의 눈을 뜨게 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고, 그는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합니다. 본문은 그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요 9:22).
한편, 그들의 아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다시 신문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 9:25)
이 대비는 가정 신앙교육의 중요한 통찰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 6장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모든 순간에 말씀을 기억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 부모가 진리를 증언하기보다 현실적인 두려움을 택합니다. 반대로, 자녀는 오히려 담대히 진리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대물림은 단방향이 아니며, 때로는 자녀의 믿음이 부모의 믿음을 일깨우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봅니다.
성경은 가정이 신앙의 출발점이자 훈련장이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부모가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는 명령에 그치지 않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로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성장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쌍방향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묻습니다.
나는 내 자녀 앞에서 신앙의 용기를 보이고 있는가?
혹은 자녀의 순수하고 담대한 믿음이 나를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가?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가정을, 공동체를, 민족을 흔드시는 분이십니다. 부모가 먼저 신앙의 본이 되기를 기도해야 하겠지만, 때로는 자녀의 고백을 통해 우리도 다시 진리 앞에 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