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인본주의 vs 신본주의 (눅 1:57-66)
- 순대리우스
-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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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와 신본주의
각 나라마다 전통이 있고 문화가 있다. 한국의 문화는 유교사상위에 세워졌고, 그 유교문화는 작명(作名)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름의 뜻보다는 주로 돌림자를 써서 족보의 서열에 구분을 뒀고, 가문의 차이를 뒀다. 그러다보니 이름이 억지로 만들어졌고, 웃지 못 할 이름들이 본의 아니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름 때문에 놀림의 대상이 되어도 전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름에 대한 전통과 관습은 비단 한국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요한이 태어나던 당시의 유대인들도 그들의 관습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요한은 그의 아버지나 친족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는 이름이 주어져야만 했지만 이는 사람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생각은 ‘요한’이어야 했다 (눅 1:59-63). 관습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생활방식이고, 그 관습은 인본주의 사상을 낳았다. 이는 인간중심의 사상이다. 인간을 무척이나 배려한 친절한 사상 같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이다. 주인인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주인으로 앉는다. 내가 살아온 경험이나 전통들에 메여있으면 인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다. 인본주의 사상을 버려야 하나님 중심사상인 신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 나의 경험과 이성, 내가 배운 지식, 이런 것들을 버릴 때 비로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요한의 이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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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17-01-24
- 사가랴가 친족들이 제안한 사가랴 대신에 요한이라 아들 이름을 서판에 기록했다. 사갸라 1,2 세로 짓는 것은 당시의 습관이요 가문의 전통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가랴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칭찬받으며 경건한 삶을 살았기에 자녀들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기대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가랴는 요한이라 했다. 이는 하나님의 사자가 이미 예언으로 주신 말씀에 순종할 까닭이다. 가족들은 세상에서 성공과 출세, 지위를 기대하며 사가랴로 짓기를 원했을 터이나 사가랴는 요한이라 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간적인 불순종이 10개월동안 벙어리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 시간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기였을 것 같다. 사가랴는 그것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며 10개월을 잘 견디어 낸 것 같다. 그 동안 제사장이면서 벙어리 되었으니 제사인들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을까?
왜 10개월 이었을까? 아이가 잉태되어 태어나기 위해 10개월이 걸린 시간이다. 만일 잉태에서 출생까지 20개월이면 20개월의 시간을 벙어리로 살아야 했을지로 모르겠다.
사가랴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한 생명이 예언에서처럼 출생되기까지였다. 혹 지금의 내가 기다리고 있는 나의 시간이 인고와 기다림, 아픔과 고통의 시간은 생명이 태어나기 위한 과정은 아닐까? 혹, 내가 하루 하루를 새날로 새롭게 태어나면 막혔던 것이 열리게 되는 시간으로 연결되지는 않을까? 막혔던 입이 열리고, 주의 손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려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되어야 한다.
오늘 큐티 묵상의 오늘의 기도가 가슴에 새겨진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가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