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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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기는손,챙겨주는손-시37;12-26

  • 다니엘
  •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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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16)

 

왜 의인이 적은 것을 가졌어도 악인들이 가진 많은 것들보다 낫다고 할까?

악인의 풍부함이란,

외적인 풍부함외에,

불안’, ‘소란’, ‘외침’, ‘동요등의 뜻을 갖고 있다.

내가 가진 풍부함은 늘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이기에

불안하고 동요할 수 밖에 없다.

언젠가 허망하게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즐겁고 선하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2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21)

 

악인과 의인의 정의가 나온다.

돈을 꾸고도 갚지 않은 사람,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악인이라 한다.

반대로 의인은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호의를 베풀고 도와주는 자라고 한다.

26절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이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는 인색하고

자녀들에게 풍성함을 남겨주는 것이 복인 것 같으나

하나님과 사람에게 베풀로 나누어줌이

오히려 자녀들에게 복을 받게 하는 길이라고 말씀한다.

시편128편도 여호와를 경외함이

수고의 복,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를,

어린 감람나무와 같은 자녀를 주신다했으니

참된 유산은 얼마나 많은 것을 물려주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되게 경외하고 베풀로 나누어줌이라고 말씀한다.

 

오늘 큐티 제목이 많은 도전이 된다.

베풀고 나누는 이에게 더 많이 채워 주십니다.

 

 

3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25)

 

한눈에 보기에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임을 깨닫는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르실래이다.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에게 도움을 준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외면하였지만

그는 다윗을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큰 돈을 내 놓았다.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자 다윗은 그에게 환대하려 했으나,

자신 대신 아들을 천거했다.

후에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귀족이 되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그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고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하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베풀고 나눔으로 자손이 복됨을 보여준 예이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21)

 

반대로 이와 같은 인물이 있다.

시므이 이다.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향하여

독한 말로 저주한 인물이다.

산비탈까지 따라가면서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악담을 했다.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자 그는 다윗에게 사과했다.

부하가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다윗을 그를 말려 생명을 구해주었으며 용서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그를 잘 지켜보라고 했다.

이에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금족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서 도망 간 종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

결국 죽음을 당했다.

은혜를 입은 자이지만 도무지 받은 것을 갚지 않아서이다.

다윗은 임종하면서 솔로몬에게 유언을 했다.

세 사람을 부탁했는데,

두 사람은 징계할 것을

또 한 사람은 선대할 것을 당부했다.

그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바르실래와 시므이 이다.

 

다윗의 일생 일대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죽어가면서도 그 두 사람을 잊지 못했던 것 가다.

불세출의 영웅 다윗.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사람.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

그런 그에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어

지금도 성경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달 되고 있다.

꾸고 갚지 아니할 것인가?

아니면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 것인가?

선을 악으로 갚을 것인가?

악을 선으로 갚을 것인가?

나 살기도 바쁜데 누구를 돕는다는 말인가?

그래도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돕고 살 것인가?

 

시편기자는 아예 전자를 악인,

후자를 의인이라고 불렀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풍성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복이 나의 손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신다.

받는 손이 아니라 주는 손,

챙기는 손이 아니라 베푸는 손.

같은 손이지만

챙겨 주는 손과 챙기는 손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