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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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1-8 죄?노!믿음?예스!

  • 다니엘
  •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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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제목은

하나님이 내 방패시니 두려울 대적이 없습니다 라는 제목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을 피할때에 지은 시라는 표제어처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묵상을 했습니다.



다윗이 평생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시편 3편은 그 중에도 가장 고통스런 일을 겪었을 때 드렸던 기도이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피난 가면서 쓴 기도시 이다.

원수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 이유를

다윗이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 때문이라고 한다.

 

1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그들은 다 다윗의 신하들이었고,

다윗에게 충성하던 이들이었다.

다윗은 그들이 압살롬처럼 그렇게 어리석고

경솔한 자를 두목으로 선택하고

자신에 대하여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태도로 바뀌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게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론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삼하 12;9-12절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심판의 말씀이 이루진 것이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는 다윗을 보고

하나님 조차 다윗을 버리셨구나!’ 생각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의 편에 선 것 같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누가보아도 명백한 자신들의 실수이며

미안한 마음 한 마디면 될 일을

오히려 큰 소리치고

마치 자신들이 억울한 일 당한 마냥

자신들이 무슨 대단한 성인군자인척

크게 마음쓰는척

마음을 내려놓고 비운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마치 깊은 영성의 소유자처럼 행동한다.

 

그럴때마다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이 싹트기도 한다.

그래도 억울한 일은 괜찮다.

억울하고,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의 결국은 다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때가되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어도

최소한 하나님이 아시면 된다.

 

그런데 본문에서 다윗의 놀라운 고백을 보게 된다.

사람들의 절망적인 수군거림을 들으면서도 다윗은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3)

 

7-8절에 가면 다윗이 뻔뻔해 보이기 까지 하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마치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처럼 당당하다.

나 같으면 결코 이런 고백을 못할 것 같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드는 것은

하나님은 지은 죄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를 하면

반드시 용서하신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한 댓가 또한 반드시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회복시키셨다고 거저 죄를 용서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있었고, 다윗의 철저한 회개가 있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모든 신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였다.

왕으로서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이라 생각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다윗은 반역하는 압살롬에게 분노하고 저주하고 싸우지 않았다.

아버지의 정 때문이 아니었다.

다윗이 자기 죄 때문이라고 인정한 거다.

피난갈 때 맨 발로 머리를 숙이고 울면서 갔다.

시므이의 모욕과 저주앞에서 그를 죽이겠다는 신하를 만류하며 말했다.

 

 

하나님께서 왜 살인죄, 간음죄를 지었던 다윗을 용서하시고 다시 세우셨을까?

우선은 다윗이 철저히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유는 다윗의 믿음 때문이다.

 

매를 맞아도

나를 사랑하시니 이러시는구나,

잘못했습니다.

징계가 큰 사랑임을 믿습니다.

이제는 용서해 주신 줄 믿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품에 안기는 자녀가 얼마나 복될까?

 

다윗의 시편3편의 고백이 이런 고백이지 싶다.

다윗은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정한 회개도 있었지만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가만히 묵상해 보면

결국 시편3편 다윗의 믿음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셨고

다윗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철저히 회개했고,

복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좌절감, 죄책감, 열등감이 많다.

내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한 은혜와 도전은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그 삶을 일으키실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받을 조건을 따지셔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거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나를 무조건 사랑하시기로 결단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그 증거이다.

 

나에게 허물이 많고, 더럽고, 죄투성이지만 사랑하시는 거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나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이 분명하다면

나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비로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임을 믿는다.

 

다윗은 울면서 시편 3편을 기도했고,

울면서 노래했으며,

울면서 믿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손가락질 하여도

다윗처럼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6)

그런 믿음괴 기도를 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윗의 실수를 따르지 아니하되

그의 믿음과 기도를 따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