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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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1-7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 다니엘
  • 20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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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오늘 말씀은 터가 무너진시대에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다.

 

삶의 기초, 기본은

인간이 살아가는 바탕이다.

경제적 기초, 건강의 기초, 사회적 안정, 정치적 안정 등도

삶의 기초라 할 수 있다.

더 근원적인 기초는

아무래도

인간의 양심과 도덕과 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양심과 도덕과 법이 살아 있으면

다른 것들이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도

나름대로 튼튼하고 충실한 기초와 기본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것들이 아무리 풍족하고 넉넉해도

양심과 도덕과 법이 사라졌다면

삶의 기초와 사회의 기본이 무너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이든 국제정세이든

들려오는 소식들이 암울하고 답답한 것은

양심과 도덕,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너무나 화려하고 다양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미 양심과 도덕과 법이라는

삶의 기초와 사회의 기본이 무너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오늘 본문도 그렇다.

삶의 기초와 사회의 기본이 무너진 모습이 등장한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활시위에 먹이고 어두운 곳에서

마음이 바른 자를 쏘아 죽이려 한다.

 

그럴 때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시편 11:1).

 

다윗은 삶의 기초가 무너진 위기때에 하나님께 피하였다.

반면에 다윗의 친구들은 다윗에게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다.

성경에서 산은

사람들이 어려움과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찾는 피난처였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피난처를 찾으라는 말이다.

친구들이 볼 때는 하나님께 피하는 것보다 다른 피난처로 피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었을 것이다.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피하면서 친구들의 권고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시편에서는 하나님을 종종

피난처, 요새, 산성, 피할 바위, 구원의 뿔, 산성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반면에 다윗의 친구들은

그들은 현실적으로 보이는 피난처를 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피하는 다윗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어리석다고 여겼을 것이다.

 

실제로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봐도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를 만났을 때

다윗처럼 하나님께 피하기보다

다윗의 친구들처럼 인간적인 방법을 택할 때가 너무나 많았다.

그들이 취한 가장 대표적인 인간적인 방법은

바로 이방나라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애굽을 의지하고 때로는 바벨론을 의지하고

때로는 앗수르를 의지했다.

그 결과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는 말처럼

의지했던 이방나라 때문에 더 큰 위기를 겪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산으로 피하라는 말은

또 다른 말로 문제의 상황에서 멀리 도망하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윗은 현실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최고의 대안임을 확신했다.

피한다고 대안이 되지는 않는다.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시편 11:4).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일들을 살피시고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면 된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아 10년 이상 쫓기는 삶을 살았다.

이런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엔게디 광야의 굴이었고

또 한 번은 십 광야였다.

누가 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처럼 보였다.

그래서 다윗의 부하들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다윗을 부추겼다.

하지만 다윗은 이 두 번의 기회 모두 사울을 살려주었다.

 

오늘 시편 11편 말씀대로 하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것은

그야말로 터가 무너지는 것 같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사울을 죽이는 것은

다윗의 친구들이 이야기한 대로

다른 산으로 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피하였기에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물론 그 결과로 다윗은 그 후에 더욱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다시 광야로 도망을 가야 했고

이방 나라로 피신해서 이방 왕의 신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의 7절은 큰 은혜와 도전을 준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편 11:7).

 

다윗은 억울하게 도망을 다니는 위기를 당하면서도

결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윗의 삶과 선택이 주는 도전이 있다.

오늘 내 삶의 자리가

아무리 인간의 양심과 도덕과 법이 사라지고

삶의 기초와 사회의 기본이 무너져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삶의 환경과 여건이 엉망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누리는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새로운 길을 가는 인생이야 말로

가장 복된 삶임을 깨닫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