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롬8;18-25 고난보다 큰 영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 다니엘
- 2016-09-23
- 614 회
- 0 건
롬8;18-25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은혜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패배하고 심각한 고난을 당한다.
탄식이 있다.
오늘 말씀은 두 종류의 탄식이 있다고 한다.
피조물의 탄식과 첫 열매인 성도의 탄식이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23절)
예수 믿고 구원받으며 기쁨을 누리며
죄사함 받으면 평안이 내 안에 임한다.
내게 주시는 첫 열매들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장차 경험하게 될 위대한 축복의 서곡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의 종 엘리에셀에게 많은 선물을 주어 보낸다.
엘리에셀은 리브가를 만나 많은 선물들을 건네준다.
그러나 이삭에게서 받을 선물에 비하며 작은것에 불과했다.
가나안정탐꾼들이 정탐하여 가지고 온 풍성한 열매들이 크다해도
장차 가나안땅에서 주실 풍성한 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대했던 복보다 고난이 더 많은 것 같다.
첫 번째 축복을 맛보게 하신 후
더 큰 축복이 있음을 알게하시면서도
우리를 삶의 고난앞에 직면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17,18절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 있고 현재의 고난이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끊임없이 고난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우리 역시
이 땅에서 고난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고난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투로 말씀하신다.
주인이 고난을 받는데 종이 안 받을 수 없고
형이 고난받는데 동생이 안 받을 수 없다.
바울이 한때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는데
주님은 그리스도인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예수님의 고난은 나의 고난이되고
나의 고난은 곧 예수님의 고난이 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세상은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악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성경을 가만히 보면
고난을 피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없다.
오히려 고난을 받으라고 권한다.
고난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품에 안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신다.
고난받지 않고 하나님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지도 않으신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3)
그리고 현재의 고난을 잘 감당하면
장차 받게 될 영광과 비교되지 않는다고 하신다
비교대상이 아니라 하신다.
그만큼 받고 누리게 될 영광이 크다는 말씀이다.
두 번째로 현재의 고난이 있다고 하신다.
현재라는 말은 주님이 부활하신 그때부터 시작하여 재림하시기까지
그 가운데 끼인 시대 전부를 포괄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이다.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일생동안 고난당할 각오를 하고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로
형제자매들안에서, 가족안에서, 직장과 일터에서
물질과 자녀들의 인생가운데 예수 그 이름 때문에
참고 견디며 함부로 하지 않게되는 많은 어려움들이
현재의 고난에 해당된다.
하나님은 고난과 영광을 비교하면서
비교꺼리가 되지 않는 영광을 강조하신다.
고난, 너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받게 될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
고난은 앞에 있는 영광에 비해 너무 가벼워!
세상 부귀와 하늘의 영광을 매일 비교하고
마음조차 쓸 대상이 되지 않음을 말씀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고난의 무게가 힘들고 무거워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준엄한 약속과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와 떨어져 자야한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고 무서워 오랫동안 운 적이 있었다.
우는 모습이 마음아프고 애처로웠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눈에 안 보여도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스스로 마음속에 다짐하면서
아이들이 제 방에 혼자서 자는 법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결코 아이들을 홀로 내버려 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숨어 있었다.
옆방에 있었지만 밤새도록 같이 있었다.
고난앞에 하나님은 그렇게 숨어계시듯
그리고 그 끝에서 더 영화로운 성도로 자리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25절)
지금 당장 그 영광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바람이 확실하면
기다리는거야.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 이전글 롬 8:26-30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성령이 나를 도우십니다 16.09.25
- 다음글 롬8;9-17 나 같은 죄인을 입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1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