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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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0;1-13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 다니엘
- 2016-09-30
- 579 회
- 1 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구원은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계획하시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작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인강의 책임있는 선교는 중요하다.
이 복음을 위해 가정 먼저 필요한 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2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좋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열심은 있었으나
바른 지식은 없었다고 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추구했던 방식은
율법에 기록된 바 ~하자, ~하지 말라만 지키면
의롭다고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율법을 완전히 지킬수도 없거니와
율법으로 의로울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이유가 없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고 말씀한다.
열심히 꼭 바른 지식은 아니다.
바울도 한때는 하나님에 대해 열심이었지만
그것은 진리는 아니었다.
그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없애기 위해 다메섹길을 가고 있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몰랐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몰랐다.
종교에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참된 지식은 몰랐다.
자기가 확신하는 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중요하다.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는 일은
구원에 대해서도 중요하지만.
구원얻는 이후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은
나의 구원이 단지 말씀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의 중요성 때문이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서도 입으로 고백할 수 있다.
정말로 내 입술의 고백이 진정한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그 사실을 믿고 있느냐이다.
야고보 2;19절은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도 지식으로는 안다고 했다.
결코 마음속으로부터 예배하고 찬양하며 고백하지 않는다.
구원은 지식 이상의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은
입술로 고백하고,
더 나아가 삶으로 증거하는 것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오늘 하루도 말씀을 하나를 알아도 분명하게 알아가고
안 바를 마음으로 입으로 고백하며
삶속에서 성품으로 드러나도록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까지 힘쓰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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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긴과보아스 16-09-30
- 유기성 목사님의 글중에 자주 사용하시는 것이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분의 글을 읽다가 제마음속에 던져주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면서 은혜로운 말씀은 들으려고 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딤후 3: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선교사들에게 ‘무엇이 두려우냐?’고 물으면 매 맞는 것, 가난, 배고픔도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단 한 가지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랍니다.
그래도 이 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 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사는 교인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돈이나 사람이 주위에 없는 것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웬지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과 마음으로 믿고 시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사람이 그것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듯 제 속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확실한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너무 가슴에 다가옵니다.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면서 은혜로운 말씀은 들으려고 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