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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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8-17 빚진자

  • 다니엘
  • 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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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빚진자가 전하는 복음의 능력

로마서 1;8-17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믿는이들에게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성도요, 둘째는 불신자이다.

믿는이들에게 사역도 두가지이다.

성도에게는 격려하고 신앙을 견고히 세우는 일이고,

불신자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바울에게서 이것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다른 사람이 나를 만날 때 그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는가?

누구이든지를 막론하고

어떤자리에서이든지 비방하고 비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고 격려하며 칭찬하며 동기부여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이 될 일이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먼저 한 일이 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었다.

기도할때마다 쉬지 않고 로마의 성도들을 위해 간구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세우고 돕기를 원한다면

먼저 기도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세움은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것이다.

바울은 계속 기도하면서 만나기를 원했다.

그럴때 한 사람의 견고함을 이루어지는 것 같다.

기도할때마다 얼굴은 몰라도, 만나지 못했어도

기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내 자신에게도 그런 기도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기도의 지경이 더 넓혀 지기를 소망한다.

기도에는 내 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과 마음도 담아 올라가야 한다.


12절을 보면 바울은

견고히 세우고,

먼저 기도하고

만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서로 유익이 되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다.

목회자는 말씀으로 세우고

성도는 주신 은사로 할 수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테이지만

부족할 때문에 오해도 받고

맡겨진 일을 그만두고 싶을때가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것은

내 주위에 영적 아리스다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어려움당할때마다 언제나 말없이 곁에 있어

힘이되어준 이가 아리스다고이다.


마음이 외롭고 힘들때

기도하고 있어요.

힘내세요.

이런 저런 내용으로 감동케 하고

눈물나게 하던 아리스다고들 때문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영적 아리스다고가 되는 일들이 많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서로 위로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은사로,

위로와 격려, 사명깨닫고

믿음을 더 해줄 영적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홀로 신앙은 넘어지기 쉽다.


진정한 사랑은 믿음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영적성장을 돕는 것,

그게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말씀묵상도 마찬가지이다.

먼저는 내속에 주신 하루의 만나를 마음껏 누리고

기록하고 나누는 이유는,

혹 누군가 우연히라도 남겨진 글을 읽다가

소망을 발견하고 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이 반복되니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은 덤이고

나를 더욱 성장케 한다.


둘째로,

믿지 않는자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일을 위해 자신을

복음에 빚 진자라고 한다.


1세기 로마.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이다.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힘으로는 로마이고

그 사회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힘은 그리스문화이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약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바울은 약자임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복음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상관이어도, 많이 배운 사람앞에서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이다.

로마는 인간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했다.


바울은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자이다.

그가 사역할때마다 그것은

주홍글씨처럼 가지고 다녀할 몫이었다.

상처이기도 했을 것이다.

평생 따라다닐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아픈 기억과 가시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픈 상처와 기억이

열정을 더해주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케 해주는

공급능력 되었다.


복음의 사람은 너무 아픈 기억들에 사로잡혀 살지 않아야 한다.

옛서 상처, 기억 너무 오래 묵상하면 안된다.

그것이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복음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