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롬6;1-11 함께 죽고 영원히 사는 신비로운 연합
- 다니엘
- 201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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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고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게 된다.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서도
죄로 갈등을 겪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실패를 정당화하기위해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치니까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해 더 많이 죄를 지어도 된다는
궤변을 늘어 놓기도 한다.
궁금한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현장에서
죄로 더불어 실제적으로 싸워 승리하는 것은 가능할까이다.
본문은 '그렇다'고 말씀한다.
실제로 승리의 삶을 살수 있는 열쇠를 상징하는 두 가지 단어가 나온다.
‘알라’, ‘여기라’ 이다.
첫 번째 성도로서 알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알라!'
믿는 자가 제일 먼저 알아야 할 일은 자신은 죽은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이미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나도 죽었다고 선언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나는 그리스도에게 영적으로 연합되었다.
2,000년전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지내심과 부활사건에
내가 믿음으로 고백하고 영접할 때 내 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래서 옛 사람, 죄에 대해 나는 이미 죽은 존재이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나를 대신해서 그 분이 죽으셨고
또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분이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나도 죽었고
부활하셨을 때 나도 영적으로 부활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세례라고 말씀하신다.
세례는 물에 들어감으로 내가 죽었다는 것
다시 나옴으로 살게 되었다는 새사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미 내게 일어난 영적인 사건을 상징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새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나도 이미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이것을 분명하게 알라는 말이다.
내 안에 일어난 신분의 변화에 대한 확실한 자각이 있어야
죄에 굴복하지 않을 있다.
어거스틴이 회심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이 된 후
길을 가다가 예전에 어울리던 거리의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거스틴이 못 본척하고 지나가자 그 여인이 따라오며 아는척을 했다.
그러가 어거스틴은 너는 너지만 나는 내가 아니다.
너는 예전의 너이지만 나는 예전의 나가 아니다라는 의미였다.
오늘 말씀이 내게 확신을 주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죄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또한 죄짓지 않을 가능성도 있음을 기억하고
쉽게 죄 가운데 살지 않도록 확신을 주신다.
두 번째로 승리하는 삶을 위해 ‘여기라’고 말씀한다.
분명한 사실에 대한 인식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나에게 의식화 시킬 필요가 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에 대해 산자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을 사실로 여기라는 말이다.
죄 지을 일이 생길 때
성질대로 하고 싶을 때
나는 죽었다고 여기라는 말이다.
죄에 대해서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제자됨에 살아 있는자로 살라는 말씀.
이재철 목사님의 큐티 묵상 에세이 글이 가슴에 남는다.
'세속적인 기운이 다 사라지셨네요. .....
주일마다 온종일 예배드리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예배, 심방 등에서
24시간 말씀을 전하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가니 다른 무엇을 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을 할 틈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아주 단순하지만 하나님께 살아있는 자로 산다는 것의
한 부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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