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16년 1월 12일 세상의 소금과 빛 되어 진정한 복을 나누십시오; 마태복음 5:1-16

  • Adonai
  • 2016-01-13
  • 684 회
  • 2 건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믿는 자녀로써 세상에 빛과 소금이되길 원합니다. 저로 인해 하나님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한 행실로 어두운 세상을 밝힐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땅의 행복을 부러워하지 않고, 항상 하늘나라에 참된 복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 느헤미야강 16-01-13
      아멘입니다.
      빛과 소금이아니라, 소금과 빛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져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빛은 드러냄으로 존재를 표현해 냅니다.
      먼저 자신이 이 땅에서 녹아지고 아로새긴 후에야 비로소 온전히 빛된자로 살게되는 것 아닐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녹아지고, 드러나고!
    • 느헤미야강 16-01-13
      팔복!

      성경에 나타난 복의 문자적인 의미가 있다.

      첫째, 창대함, 번영(바라크)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 이름이 창대하게 하리라
      이 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재벌총수가 제일 복 받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행복(토브)
      열심히 일해서 부자되었는데
      가정이 깨지고 무너졌다면 복이 아니다.
      상황과 조건과 관계없이 관계속에서 오는 행복이 있다.

      셋째, 선함, 아름다움(투브)
      복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예쁘고 아름다운 여인기 입에 답기 어려운 말을 하거나
      멋진 신사가 뻔한 거짓을 일삼는다면 복이 아니다.
      이것은 속사람을 가꾸는데서 나온다.

      넷째, 바른길, 정도(데레크)
      내가 얻은 창대함이 정도를 걷지 않았음에도 부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 아니다.

      다섯째, 하나님앞에 무릎 꿇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다.
      복은 매 순간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이다.
      일이 너무 잘되어 기업이 창대해졌는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여유도 무릎 꿇은 시간도 없다면 그것은 복이 결코 아니다.
      복 받은 사람은 시간이 갈 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께 무릎꿇게 된다.

      아브라함은 실제 그의 삶속에서 창대하게 된 것은 없다.
      그가 생애속에서 누린 복은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는 복,
      행복해 지고
      선하고 아름다우려 했던 것
      정도를 걷는 길이 있었으며
      그 결과 믿음으로 조상으로 창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구약에서 이 복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 시편 1편 말씀이다.
      첫째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둘째로,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이것이 주님께 무릎꿇고 더 가까이 하려는 것이며
      행복, 선하고 아름다움을 꿈꾸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도를 걸어가는 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풍성하니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풍요가 끝이없다.
      그것이 복이다.
       
      예수님의 팔복!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첫 설교이다.
      첫 설교가 복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그동안 복에 대한 정의가 잘 못 되어 있었다는 뜻이고
      바로 잡기 위한 의미를 포함한다.
      소유가 아니라 관계이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지
      그렇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한다.

      1.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의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자,
      누가복음에는 그냥 가난한자로 표현되어 있다.

      누가복음 수신자는 데오빌로 각하이다.
      직책도 높고 결코 가난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믿는 구석, 의지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은 그만큼 작아질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가진 것이 없기에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바람막을 수 있는 창문이 있음을 감사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됩니다.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마태복음 독자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가난하면 물질을 초월하기 어렵다.
      더 완악해질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해서 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자기 자신에게 절망한 사람이다.
      경제적인 빈부에 관계없이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려 하지 않는 마음이다.
      세상 살아가면서 때로 나의 계획이 실패하거나 무산되는 것
      그때야 말고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을 찾으면 복이 됩니다.

      결국,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의지 하지 않는 마음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를 의지 하지 않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구하는 마음이다.

      2.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요

      애통하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처절하게 운다는 뜻이다.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었을때 잔다고 하자
      믿음 없는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우셨다.
      겟세마네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맞추는 차원에서 우셨다.
      그때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과 격려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죄된 모습과
      변화하지 않은 자신때문에 슬퍼하고,
      더 사랑하고 섬기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위로과 격려가 임한다.

      3.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온유함이란 무기력하고 결단력이 없으며
      사람 좋을때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온유는 프라우스(헬).
      야생동물의 거친 품성을 일컫는 말이다.
      조련사가 훈련시켜서 그 품성을 그대로 있지만
      그 힘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사용할 때 쓰는 말이다.
      한마디로 훈련받은 야생마를 뜻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봄바람처럼,
      때로는 적진깊숙한 곳을 뛰억기도 한다.

      예수님도 치유와 회복, 말씀의 자리에서
      부드럽게 때로는 분노의 모습으로도
      성전을 뒤집을때는 거친 듯 폭풍이기도 하셨다.

      왜 땅이 기업인가?
      원뜻은 땅으로도, 나라, 세상을 뜻하기도 한다.
      온유한 자가 나라와 세상을 얻는다.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 모세
      그는 이 땅에 무덤은 없지만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소유했다.

      받는다는 말은 상속받는다는 의미이다.
      온유하면 권리를 상속시켜 주신다.

      4. 의에 주리고 목라는 자는 배부를 것이다.

      무엇에 굶주리고 무엇에 목말라 하느냐에 따라
      한 개인과 국가의 역사가 달라진다.
      히틀러는 권력에 목말라해서 수천만면이 학살당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날마다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매일 매일 묵상하지 않으면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가장 바른 관계는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영혼히 흡족하게 되면 삶의 정황은 문제되지 않는다.
      윤택할 수 있다. 흡족할 수 있다.
      그게 배부름이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지만
      오히려 바깥의 성도들에게 감사하라, 기뻐하라 했다.
      영혼이 배부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배불러 가면
      우리의 영혼이 배불러 간다.

      5.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긍휼함을 입는다.

      긍휼이란 어떤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다.
      엘레네오(헬)는 구체적인 행위를 뜻한다.
      누군가 침울할 때 말을 걸어주는 것,
      말없이 손을 잡아 주는 것,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나눠 주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다.

      아무리 가진 것 많아도 상대적인 빈곤감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나눠주지 못한다.
      수억을 가지고 있어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몇 만원을 가지고 있어도 나누는 사람이 있다.

      긍휼과 동정심은 다르다.
      긍휼은 누군가를 향한 나의 행동이 지속성을 띠는 것이고
      동정심은 일시성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믿어주신 주님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 죽어주신 사랑 때문에를
      가슴 깊게 누리고 깨달은 사람이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긍휼을 입은 자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를 기뻐하고
      늘 회개하여 거룩하여지기를 기뻐하는 자이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음이 청결함이란 내 영혼을 주님께 맞춤으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청결함이 드러나는 사람이다.
      다른 것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구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나의 시선을 고정시킬때에만 가능하다.
      매순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교육을
      내 삶속에 적용하는 사람이다.
      하나님만 집중하니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 속에 다른 것들로 채우는 한 하나님을 볼 수 없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다.

      누군가와 평화하기 위해서는
      내것을 양보하거나 내려 놓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내어주셨기에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평화가 임했다.

      자기 비움없이 평화는 없다.
      다툼은 자기비움없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의자녀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화평할 수 있느냐이다.
      화평을 위해 얼마나 자기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로 드러난다.
      가만히 보면 자기것 포기하지 않고
      자기 비움, 낮아짐 없이 평화하는 사람 볼수 없다.

      내가 누군가와 화평하기 위해
      나를 내려놓고, 손해보고, 비움이 있음으로
      누군가가 구원의 길을 얻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받은’의 의미는 현재완료이다.
      과거의 어느시점에서 지금까지이다.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한 번 되어진 것만이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의때문에
      복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고 있는 사람을
      복되다는 말이다.
      주님을 믿는데 아무런 어려움 없다는 것,
      박해가 없다면 재고해 보아야 한다.

      박해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바른 신앙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적기에 박해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불이익도 감당하려는 사람에게
      천국은 그들의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는 시작된다.
      그게 천국이다.

      팔복은
      한마디로 내게는 이렇게 다가온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는 애씀이 내게 복이다.
      내게 없는 것 때문에 때로는 가시 같아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복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