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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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께 - 잠언14;1-16

  • 새생명
  • 2015-11-11
  • 1,082 회
  • 4 건
잠언14장 1-16절 말씀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잠언이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관심은 언제나
 “무엇을 하느냐(to do)”라는 문제보다는
 “무엇이 되느냐(to be)”에 있습니다.
 잠언이 이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들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절에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인이라는 한 인격체가 지혜로운 존재가 되면 그가 하는 일을 통하여 집이 세워지지만,
미련한 존재가 되면 집이 헐어진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5절도 동일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이 구절 역시 한 사람이 증인이 되었을 때 그가 신실한 존재인지 아니면 신실치 않은 존재인지에 따라서
그가 증언하는 것이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잠언에서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명사들,
즉 지혜로운 자, 미련한 자, 의인, 악인, 슬기로운 자, 어리석은 자, 정직한 자 등은
모두 사람의 어떠함(to be)을 표현해 주고 있는 언어들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어떤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지 안다면 그를 통하여 어떤 일들이 행해 질 것인지 예측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라고 불리는 사람을 통하여 어리석은 일들이 행해 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고
“어리석은 자”라고 불리는 자를 통하여 지혜로운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또한 부지런한 자에게 궁핍한 생활을 기대하는 것은 게으른 자에게 풍요로움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합당치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존재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합당한 일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이 요청됩니다.
하나는 우리의 관심이 외모를 꾸미는 것으로부터 속사람을 꾸미는 일로 바꾸어져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관심이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로부터 “무엇이 되느냐” 라는 문제로 바꾸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외모를 꾸미기 위하여 하고 있는 모든 노력을 우리의 속사람(내적 존재)을 꾸미는 일에 투자한다면,
우리와 우리가 속한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처럼 우리의 관심이 바꾸어진다면 우리와 공동체 모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변화 중에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Adonai 15-11-12
      지혜는 하나님꼐서 주시는 선물인데, 지혜를 구하고,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하는 저를 생각하니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항상 말과 행동 하나하나 잘 생각하며 하도록 하겠습니다, 외면이 아닌 내면을 꾸미는 제가 되겠습니다!
      • 참믿음 15-11-12
        아메닙니다. 저도 외면이 아닌 내면을 꾸미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속에 있는 것이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일수록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안예 계신 성령님, 십자가 사랑때문에 그것 품고 품으니 품다보니 어느날
        그분이 드러나는 시간에 저의 외면도 활짝 밝게 될 거라는거.
        아도나이님에게도 저에게도, 새생명교회 모든 식구들에게고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은혜로다 15-11-12
      14:2절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정직하게 행하는 것은 분리 될 수 없다.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어찌 정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직과 패역이 상반되어 배치되어 있는게
      사뭇 부담이 된다.
      혹 정직하지 않으면 곧 패역함을 이루는 것 아닐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면 경멸외에 다른것은 없다는 말 아닐까?
      온 천하, 삶의 구석구석 하나님 솜씨 아닌것 없고
      하나님 손길닿지 않은 것 없는데
      그것 인정하지 않은다면 그것이 경멸하는것 일 수밖에 없겠다.
      그게 패역하게 행하는 자라는 것.
      거꾸로 읽어가니 두렵다.

      14:3절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잠언은 미련한 자와 교만을 언제나 동일시 하고 있다.
      미련하다는 것은 가르침을 받지 않는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는것은
      교만한자는 스스로 무엇인가 알고 누리고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 하니
      결국은 미련한 자가 되는 거다.
      아,  미련함과 교만함은 같은 것이다.
      누군가 가르침 받지 않으려 하는 것만큼 미련한 것 없음을 알게 된다.

      14:4절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모든 일을 대가를 지불함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해 준다.
      믿음의 길을 걷다보면 많은 이들이 무엇인가 얻기를 원한다.
      문제는 정작 수고는 원치 않는다.
      이율배반이다.
      십자가없이 부활의 영광이 없는데
      십자가는 거절하고 영광만 찾는다면 못된 것이다.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 얻기 원하고
      하나님께 마음두지 않으며 동행을 구하고
      날마다 말씀과 함께 살지않고 말씀이 주는 능력을 구하는 것
      참 누가 봐도 밉상이다.
      가끔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를 볼때마다
      참 영락없는 밉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가꾸는 수고를 하게 되는것은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둘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14:5절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증인은 보고 들은것을 가감없이 말하고 증언하는 사람이다.
      원어는 순교자이다.
      내가 보고 들은것을 위해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증인이라는 말이다.
      나게 목숨걸고 증언할 사건, 내용은 있는가?
      내 삶의 자리에서 희생하고 참고 내려 놓는것 하나하나가
      증인의 삶임을 깨닫는다.

      더하기 뺄셈을 하지 않고 곱셈과 나눗셈을 할 수 없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 헌신하고 수고하지 않고
      내일 큰 일을 하겠다는것처럼 어리석은것은 없다.

      젊은이들을 만날때마다 나름대로 큰 꿈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홀해 하는 것을 본다.
      다윗이 주어진 자리에서 양을 치던 그 성실이
      결국는 나라도 다스리게 되었다.
      10년의 쫓기는 삶, 그리고 7년6개월동안의 기다림이 있었기에
      위대한 다윗이 있었고
      실패뒤의 다윗이 었었다.

      크지 않은 일일지라도
      오늘 내가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 하나 하나 살아가는 것이 증인됨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하신다.

      14:10절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장소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장소라는 말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고통도
      또는 즐거움도 다른 사람이 알수도 없고 참예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지만
      ‘나는 네 마음 다 알아, 이해해!’
      쉽게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기도하거나
      그냥 침묵으로 곁에 서 있는것도 참
      귀한 일임을 깨닫는다.

      14:12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생명과 사망의 길이 사람들의 판단에 의존 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 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사람들의 보기에 바를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지 않다면
      그 길은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
      반대로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의로운 길로 인정하신 길이라면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생명과 사망의 길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존 되어 있다는것에
      내 마음 전부를 걸어야 하는데
      왜 그게 잘 안되는지...

      14:13절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사람의 외적 삶의 모습과 내면의 모습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외적 삶은 좋은 환경이 마련되면 웃을 수 있지만
      내면은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러니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진다면
      속사람의 웃음과 드러난 웃음이 같아지도록
      하나님으로 꽉 채우는 삶 되어야지.
      다시 한 번 말씀으로 채우는 삶의 소망을 붙들게 되니 감사하다.

      14:15절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어리석은 자와 슬기로운 자의 차이는 분별력이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온갖 말을 믿지만
      슬기로운 자는 분별적력이 있기 때문에 분별하여 듣고 행한다.
      이 말이 참 좋다.
      그런 사람이 좋다고.
      나로부터 시작해야지...
    • 수인기 15-11-13
      지혜와 겸손 너무 많이 듣고 쓰지만 정작 내것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힘듭니다.또 간절히 원하면서도 노력은 하지 않는 제 자신을 깊이 반성하며 돌아봅니다.
      하나님 오늘의 기도처럼 제감정과 느낌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판단과 결정의 기준으로 삼기를 결단합니다.말씀대로 살기위해 매일매일 씨름할때, 말씀이 깨달아지고 내것이 되는 은혜를 주세요.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