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월10일-창세기 3장 통독 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10
- 547 회
- 2 건
3장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
이스라엘 백성이 이 최초의 범죄와 타락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는지 그 동기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사람들에게 좋다는 것임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하나님의 계명에 기꺼이 순종하려고 할까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이 율법을 주신 동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율법에 순종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을 때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동기는 마귀가 하와에게 말한 것처럼,
인간을 운명에 붙잡아 두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범죄와 타락에 대한3장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동기를 생각하도록 도전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우리와 달리 하나님께서 ‘좋았다’고 평가하셨고
조금도 망가지지 않은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에게 유보된 더 많은 좋은 것들과 행복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해서든지(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싶었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늘 우리가 빠지기 쉬운 착각입니다.
하와는 선악과에서 육신의 정욕(먹음직도 하고), 안목의 정욕(보암직도 하며),
그리고 이생의 자랑(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요한이 말한 세상의 특성에 매료되었습니다(요일2:15~16).
특히 ‘보암직’과 ‘탐스럽기도’라는 말은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에서 금한 탐욕과 같은 어근을 지닌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그분과 평화를 누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지식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온전한 신뢰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종은 세상과 육체와 악에 대한 영적 승리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써가 아니라
순종함으로써 얻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은
고통과 갈등과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재판장이십니다.
3장의 후반부(7~24)가 보여주는 주제입니다.
죄인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들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죄인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그들은 저주로부터 벗어날 것을 바라보고,
악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가 되었을까요?
죄인을 향해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대속(substitution)의 개념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가죽옷입니다(21).
그리고 에덴에서 내어보내신 후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로 동산의 길목을 지키게 하심으로
생명나무로 돌아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이 그룹들은 나중에 성막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에 수놓아짐으로써
다시 한 번 죄인이 죄를 해결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하나님의 조치는 언젠가 죄를 해결하고
그 길을 열어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숨겨져 있는 조치였습니다.
죄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아니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실로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계명을 범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또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여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의 길인지를 본문은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행복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넘어지더라도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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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1-11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은 하나님 가장 위대한 피조물인 사람을 타락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외에 모든 열매를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는데,
사탄은 간교한 말로 하와를 미혹하여 마치 하나님께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처럼 속였다.
이로인해 금지된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여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결핍을 느꼈다.
그렇게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린 채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던 그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과 하와를 회복시키시기 위한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는 그 어떤 곳에서도 우리의 결핍을 해소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오직 하나님께 나올 때만 가능하다.
오늘도 사탄은 악한 계략으로 우리를 미혹하여 우리의 자리를 잃게 한다.
하나님이 아니고도, 교회가 아니어도, 말씀이 없어도, 기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말씀을 묵상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기도의 자리에 있지 않고, 예배 가운데 나오지 않고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다.
이렇게, 다시금 우리를 은혜에 자리로 초대하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만 회복될 수 있고 온전할 수 있으며 평안을 누릴 수 있기에.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말씀 앞에 있는가? 기도의 자리에 있는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나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부르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 야긴과보아스 18-01-12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꽤 오래전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내용이었습니다.
선악과 법칙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풍요롭게 살 수 있고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의 삶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풍요와 교제를 단절시킨 것은 선악과 였다고...
선악과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고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풍요도 끝이 났다고...
선악과를 취하지 않았다면 이미 주신 모든 것으로 넉넉함을 이룰 수 있었지만
선악과를 취함으로서 이미 주신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했습니다.
이미 주신 것, 열매와 영생을 잃어버렸다.
선악과의 법칙!
그것 따 먹을 줄 알았으면서 왜 만들었냐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창조주와 피조물 가장 구별짓는 사랑의 장치가 선악과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되어지지만
또 하나 가슴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그것을 잘 지키면 이미 주신 것으로 충분하지만
그것을 취하면 이미 주신 것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제게는 큰 충격이었지만
지금은 아, 그렇지! 여기까지 이해하게 된 것이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선악과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주일성수! 십일조! 부부! .......
한 주간 동안 우리에게 주신 6일 동안 임으로 할 수 있게 하시고
그것으로도 얼마든지 삶을 누릴 수 있으나
주일마저 탐이 나 내것으로 취하면 나머지 6일도 거두어 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나 1/10만은 내게 돌려 둠으로서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고 하신 십일조.
그러나 욕심으로 내가 취하면 나머지 9/10도 거두실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정에서 부부도 옆에 돕는 베필로 주셨으나
다른 것이 눈을 돌리면 주신것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율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그 해석이 옳으냐 아니냐는 제외하더라도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잠시 구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것이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으로 막으신것과 같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그 휘장을 여시고
다시 영생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변함없고 반드시 이루신다.
순종하고 믿을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는
오직 나의 몫임을 말씀을 읽다가 주신 은혜로 적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