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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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출30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4-10
  • 514 회
  • 3 건
30장 분향단, 속전, 물두멍, 관유, 향에 관한 규례
부제 :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저주를

출애굽기의 성막에 대한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합니다. 그 순서는 성도의 하나님 체험에 따른 순서와 같습니다.

1. 분향단 규정(1-10) 
성도는 놋제단에서 자기 죄가 재로 변한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 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금향단에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립니 다. 놋제단을 통과하지 않는 금향단의 체험은 없습니다. 금향단은 성도의 놀라운 축복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성도는 그리스도의 중보의 실재와 효력을 경험합니다. 놋제단을 통과하여 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떡상과 등대, 그리고 향단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 인간의 죄와 악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현재 누리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는 육적인 성품이 자리잡을 곳이 없습니다. 육적인 성품은 그것에 속한 모든 것과 함께 놋제단(번제단)에서 소멸되어 재 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올라가는 감사의 향기인 그리스도 의 향기를 우리 앞에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 
한편 내재하는 죄의 행위가 표면에 나타나면, 그런 죄에 대해서 하나 님과 해결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는 가차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예배와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맛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장 벽입니다. 거기에는 영적인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입니다. 그리스도는 예배의 기초와 제물이십니다. 성령은 예배의 능력입니다. 놋제단에서 희생제물의 의미를 지니신 그리스도를 보았다면, 이제 금 향단에서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제사장 직분이 놋제단과 금향단 사이에 소개되었 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간구는 자기의 희생제물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은 흘린 피의 변함없는 기초에 근거합니다 (10).
 
2. 속전에 대한 규정(11~16). 
회중을 위한 속전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지불했습니다(15). 지식이 나 경험이나 재능이나 경력이나 열심이나 헌신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구속의 근거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헌신이나 열매는 차이가 있어도, 그리스도의 피에 있어서는 인간은 다 동일합니 다. 구속은 제일 먼저 굳게 잡아야 할 일이며,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아무리 배우고 경험하고 헌신한다고 해도 우 리는 결국 단순하고 거룩하고 불변하고 영혼을 생기있게 하는 피의 교 리인 하나님의 구속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처음 주님을 알게 되었을 때 갈한 영혼이 물을 마셨던 그 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물두멍에 대한 규례(17~21). 
제사장들은 여기서 손발을 씻음으로 제사장에게 요구되는 순결을 유지 해야 했습니다(20~21). 개인적인 거룩을 부지런히 유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참된 교통은 존재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정결케 하는 역사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즉 우리가 양심에 비쳐 볼 때 말씀이 명백히 정죄하고 있는 것을 계속 행하기를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는 제사장적인 성품의 능력을 결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에게 조금의 불결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즐길 수가 없 습니다. 제단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물두멍을 사용함으로써만 가능합 니다. 예배는 언제나 거룩한 능력 가운데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거 울에 나타난 자연적인 모습은 잊어버리고, 말씀 가운데 제시된 그리스 도로 온통 충만해져야 합니다. 이 길에서 오직 "손과 발"—행위와 길— 은 성소의 정결함을 따라 깨끗해져야 합니다.

4. 관유(22~33)
성막의 모든 기구들과 함께 제사장들이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상징합니다. 믿는 자들이 성령님의 은 사와 은혜의 동참자가 되는 것은 영원히 복되시고 지극히 높아지신 그 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의 자격으로서 입니다. 성령은 육의 필요를 채우 는 것이 결코 아니며, 성령의 역사를 모방할 수는 없습니다(32~33). 교회의 머리로부터 그 기름이 흘러내려와 모든 교회의 지체들에게로 흘러가는 것을 시편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 고"(시133:1, 2). 그리스도와 관계된 것은 무엇이든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습니 다.

5. 성결하게 만든 아름다운 향(34~38). 
이 향(香)은 측량되지도 않고 측량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제시합니다. 향물의 성분의 양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고 다만 "각기 동 일한 중수로 하고"(34절)라는 말만 있습니다. 향기로운 향은 오직 여호 와를 위해서만 특이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38). 이 향의 위치는 "증거 궤(법궤) 앞"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 
과오를 저질렀거나 악을 행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저주를 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엄숙하고 의미 심장한 말씀인지요. 마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거짓 교훈과 악한 행실의 모든 태도에 대항할 효과적인 보호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모든 악 의 원천이고 악 그 자체입니다.
    • 이형원전도사 18-04-11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출30:19~20)

      하나님께서는 물두멍을 만들게 하시고 그것을 성막과 그 앞에 놓인
      번제단 사이어 두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 갈 때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죽음을 면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들의 손과 발을 씻는 다는 것은
      거룩함을 유지하고 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거룩함이 없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가지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거룩함을 유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생기는 장벽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약함으로 인해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정결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겠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물두멍에 그 손발을 씻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깨끗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언제나 정결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나의 삶에 죄가 틈타지 못하도록 늘 경계하고 내 자신을
      돌아보길 기도합니다.
      때로 연약함으로 죄가운데 빠지더라도 곧 그것이 죄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나아감에 막힘이 없고 주님께 나아감을
      기쁨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 야긴과보아스 18-04-11
      금향단으로 나아가는 길

      커피 숍에 들어가면 커피 향이 있듯이,
      때때로 후각으로 사물이나 상황을 인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성막, 특히 성도와 지성소는 폐쇄된 공간이다.
      제사장들이 성소를 섬길 때 제일먼저 피의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이다.
      번제단 위에서 기름과 고기가 타는 냄새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금향단(분향단)이 있어 향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드려지고 있었다.
       향이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어쨌든 성막은 냄새로 가득찬 곳이었고,
      이 섞여진 냄새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 이곳이 성막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듯 하다.

      금향단은 출입문으로부터 속죄소를 보이지 않게 가린 휘장까지 이르는 과정의 마지막 기구였다.
      이는 곧 금향단 예배가 성소에서 진행되는 모든 예배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경지라는 뜻이다.
      다른 모든 일들의 목적은 이를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한다.
      금향단는 지성소에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다.
      금향단에서는 늘 향연이 올라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향을 흠향하셨다.
      이 금향단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기도이다.

      분향단의 기도의 향기를 통해서 이곳이 성막이구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교회에서 기도의 향기가 아침 저녁으로 넘쳐나고,
      한 성도의 삶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의 향기가 드려지는 것을 보고
      이곳이 교회이고, 이 사람이 성도이구나를 알게 된다는 것 아닐까?
      한 성도의 신앙됨, 예배자됨의 마지막 자리가 기도의 자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금향단에서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전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놋제단에서의 속죄제사가 피와 함께 드려지는 일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하는 장소인 금향단은 성결함이 요구된다.
      금향단에서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장들에 의해서 올려지는 향연이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상달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속죄의 피가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죽으셨다는
      이 복음에 근거해서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다(롬 3:25).

      오늘날 나에게는 금향단이 없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향기를 올려 드러야 할 이유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분향을 완성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향기로운 제사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리는 오롯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울 사도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8)"고 권면했다.
      향기로운 제사인 기도를 나의 삶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일이 금향단으로 나가는 길임을 깨닫는다.
    • john 18-04-11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출 30:)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던 그 날,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께 완전히 속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살리시고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스무 살 넘은 모든 사람들에게
      직책, 성별, 재정능력에 관계없이, 즉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속전을 거두어 회막 봉사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속전을 통해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나의 삶도
      이제 하나님께 완전히 속해 있다. 하나님께서 피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주님의 일을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할 책임이 주어졌다. 그를 통하여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기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드리는 모든 헌신이
      바로 오늘날 내가 드릴 속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구원받으려고, 복 받으려고, 꾸지람 듣지 않으려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크신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기쁨과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인애를 기억하게 된다.

      때로는 주님의 교회를 섬긴다면서도 그분의 대속의 은혜를 잊은 채
      불평과 원망을 일삼으며 마치 내가 하나님께 무엇이라도 해 드리는 양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속전을 드렸듯
      나 역시도 어떠한 가운데 구원받은 자인가를 기억하며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몸과 마음과 힘과 정성을 드려야 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