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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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금) 삼상14장_사울_믿음없음-어리석음
- 느헤미야강
- 2018-08-10
- 473 회
- 2 건
삼상14장 사울의 믿음없는 어리석음
앞장의 상황을 보면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가지가 극적으로 상황을 바꿨습니다.
하나는 요나단의 패기와 대담성이고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요나단이 6절에서 ‘자신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 할례없는자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나아갑니다.
할례없는자들이란 이방은 할례를 받지 않음으로 나온 말이지만
곧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관계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자기 언약 백성을 보호하시며 위하여
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그리고 전쟁은 우리의 힘에 있지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하나님이 블레셋을 우리 손에 붙일것인지 표징으로 구하며
단 두사람이 적진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건너가서 불레셋군대에게 자신들을 보이면 그들의 반응에 따라
하나님이 붙이시는지 믿고 따르기로 합니다.
15-23절 결국 블레셋 진영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자기끼리죽임)
건너편에서 바라보던 이스라엘이 합세하여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23)
이후 사울은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기까지
백성들에게 아무 음식물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전쟁하는 군인에게 지도자가 어찌 이런 미련한 맹세를 할 수 있는지,
미련한 명령을 내립니다.
다만, 요나단은 듣지 못했으므로 모르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사울의 명령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29,30).
결국 백성들은 탈취한 짐승을 잡아 먹게 되고,
사울은 결국에 백성들이 자기의 소를 잡아 먹게 합니다. 그
리고 37절에 사울이 블레셋을 계속 추적해서 싸울것인지를
하나님께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물고 요나단이 뽑혔습니다.
사울은 요나단때문임을 알고 벌하려 했으나
백성들의 만류로 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24-46까지 나열된 문제들을 통해 보여주는.
사울의 어처구니없는 식물을 먹지 못하는 맹세나,
요나단이 부친 왕에 대한 처사를 비난 한 것,
군대가 그 명령을 무시하고 피채 먹은 것,
잘못된 맹세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않았음에 처형하는것,
맹세에 대해 백성의 여론에 따라 맹세가 무시되는 것.
이런 일련의 것들을 통해서 성경은
그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사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고려하지 않고 마구 맹세하고
뒷 처리도 못하는 충동적인 인물이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 좌충 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없이 잘 되는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러나 사울이 왕위에 있을 동안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에게 향하는대로 이겼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도 말씀을 지키려고 애쓴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 경외함이 없이 하나하나 사건따라
형식적 순종이 그의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것이 죄라 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승리하지만 그의 결말을 보면
그가 어떤 믿음의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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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8-12
-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요나단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고백하기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고백 뿐 만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나아간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믿음으로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핑계한다. 믿음을 적당히 지키면서 또 세상과도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충만한 자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이스라엘 손에 넘길 것이라는 확신을 요나단에게 주었고 요나단은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나아가게 되었다.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블레셋 사람이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했던 이야기 요나단에게
확신이 된 것은 그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분명히 보이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원한다. 그리고 그 뜻대로 기꺼이 나아갈 수 있는
믿음 또한 내 속에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나의 사는 동안 언제나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
- john 18-08-12
-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삼상 14:10)
자신의 무기를 든 소년과 함께 블레셋 사람들을 기습했던 요나단.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하기 전에 하나님의 표징을 구했다.
자신의 용맹과 혈기만을 의지하지 않고
오늘 자신의 이 모험을 하나님께서 확증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의 태도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가는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그 뜻을 구하기보다
나의 열심을 가지고, 나의 경험이나 지식에서 오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 나갈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진정 그 일을 원하시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확인하기보다
하나님 일이니까 당연히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나님보다 나를 앞세웠다.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지치고 버겁고 힘이 들 때가 많았다.
내 열심이 앞설 때는 언제나 그러했다.
하지만 적군을 물리치는 당연한 사명 앞에서 조차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표징을 구했던 요나단의 모습을 보며,
아무리 좋은 명분의 일이라도, 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징을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의도하신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사명임을 깨닫게 된다.
이후로는 늘 나보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기로 결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