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0.31(수) 왕하7장_하늘에 창을 내시는 하나님
- 느헤미야강
- 2018-10-31
- 472 회
- 2 건
1.
아람 군대의 사마리아 포위로 백성들은
자식을 잡아먹어야 하는 정도로 고난을 겪게 되지만,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 고난은 한 순간에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증인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되던 나병환자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참된 신앙은 언제나 불신앙의 세력들에게 공격을 당합니다.
요람 왕이 보낸 장관은 엘리사가 내일이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이전과 같이 정상적 상황이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하자,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다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결국 그 불신으로 죽게 됩니다.
2.
나병환자들은 성내에 살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니
나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고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자는 태도로 나갔다가
아람 군대가 모든 군수품을 두고
황급히 철수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이들은 탐욕으로 반응했지만,
이어 성 안의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고
이 소식을 성 문지기에게 알립ㄴ다.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3.
이처럼 곤란한 상황이 하루 만에 바뀔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이나 예상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믿음을 요구합니다.
불신했던 장관의 죽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지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중심에 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상 밖의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4.
하나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사용하신 데는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에게 복음을 전한 것도 무명의 한 소녀였듯이,
나병환자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도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그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우리나 세상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무능이나 부족함이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이 의지하던 장관은 너무나 똑똑해서
믿음이 아닌 계산에 의지하고
불신으로 반응함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5.
나병환자들의 깨달음이 있는가?
복음을 먼저 받은 교회가
나병환자들이 가졌던 깨달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나병환자들에게 아람군대가 다 철수했다는 소식
그것도 모든 물자를 놓고 도망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요, 복음이었습니다. 그
들은 복음을 경험하고 누렸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누리고 경험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그것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함이 생깁니다.
나에게 이것이 있는가?
나는 참으로 복음의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는가?
- 이전글 11.1(목) 왕하8장 - 믿고 순종하는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18.11.01
- 다음글 10.30(화) 왕하6장_곤고할때 조심하라 18.10.30
-
- john 18-11-01
-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왕하 7:9)
아람군대의 포위가 풀어진 것을 성에 알린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병환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람들과 격리되어 어쩌면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을텐데 아람군대가 철수했다는
이 놀랍고 복 된 소식을 성내에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하여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사용하신다.
세상적으로는 멸시받고 도태된 것같은 사람이라할지라도
당신을 일을 위해 얼마든지 그들을 들어 쓰시는 것을
성경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와같은 자를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기 원하시며 생명을 살리기 원하신다.
세상적으로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나 이지만
나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이 은혜를 잊은채
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때문에 오늘 말씀에 나병환자들에게 있던 열심,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전하고자하는 선한 마음이
오늘 나에게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은혜를 깊이 깨달았을 때만 가능하다.
내가 어떠한 가운데 은혜받은 자인가를 기억하며,
그 은혜가 참으로 크고 놀라운 은혜이기에,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허락하신 은혜이기에
감사함으로 그 은혜를 전하는 내가 되기를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11-01
-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왕하7:9)"
우리는 보통 좋은 소식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특별히 그 소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좋은 소식이라면 더 전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을 것이다.
나병환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아람 진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죽음이 아닌 삶의 소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동안 그 기쁨에 취해 있던 그들은 이 소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함을
생각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을 지체하면 자신들에게 벌이 내려질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소식은 생명의 소망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잡아 먹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이 나병환자들의 좋은 소식은 그들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을 알았던 나병환자들은 이 소식을 알리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이 소식을 통해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된다.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다.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갈 수 있는 복음의 소식이다.
과연 나는 이 복음을 얼마나 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나에게도 이 나병환자들과 같이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양심의 소리가 함께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양심의 소리가 없다면 나에게는 그만큼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다.
그것도 단순한 좋은 소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에 관한 좋은 소식이다.
이것을 전하는 것에 대하여 지체할 수 없다.
언제나 나의 삶이 복음을 전함에 지체하지 않는 삶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이 복음을 가능한 많은 자들에게 전함으로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