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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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수) 왕하19장-구원보다 소중한 하나님의 이름

  • 느헤미야강
  • 2018-11-14
  • 466 회
  • 2 건

1.

엄청난 믿음의 위기가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본문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히스기야에게 베푸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보여줍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하는

랍사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은 그의 태도는

회개하는 자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히스기야는 참모 회의를 소집해서 대책을 의논하는 대신,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을 죽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37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2.

한편, 랍사게는 립나의 전선에서 전쟁을 하던

산헤립 왕에게 갔고 앗수르 왕은 다시 사자를 보내

예루살렘을 위협하고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앗수르의 손을 피한 나라가 없으니

너희도 그럴 것이라는 최후 통첩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다시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그 편지를 펴놓고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의 초점은 단지 유다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예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19).”

 

이것이야말로 참된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자세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사야를 통해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21~28) 유다의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29~34).

예루살렘 구원의 약속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되어

두 해 동안 씨를 뿌릴 수가 없기 때문에

밭에서 스스로 난 것을 먹게 될 것이고,

세 번째 해에는 심어서 먹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두 해 동안을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살아가야 하는

믿음의 삶을 요구받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5천명을 쳤고,

산헤립은 예루살렘 공략에 실패한 후,

돌아가 니느웨에 거하다가 신하들에게 살해당합니다(35~37).

 

3.

하나님은 말씀하고 성취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20).”

그리고 모든 말, 특히 하나님을 모욕하는

모든 말도 들으십니다(22,28).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힘의 논리지만,

결국 하나님은 모든 자,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세상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위기의 순간에 요구하신 것도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예루살렘 사람들이 두 해 동안의

포위와 농작물의 보장이 없는 삶을 어떻게 지낼 수 있었겠는가?

2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늘 이 세상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합니까?

    • john 18-11-15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왕하 19:1)

      어려운 순간에, 위기가 찾아올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원망과 불평, 정죄와 분노이다.
      이러한 반응은 내게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지만
      지금껏 나에게 나타나는 대부분의 반응은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모욕하며
      유다를 위협하는 랍사게 앞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려움 끝에,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 쓰다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히스기야와 같이 위기 가운데, 억울하고 괴로운 순간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 앞드리는 일은 쉽지 않다.
      위기 앞에선 연약한 우리 인생들의 반응
      언제나 원망과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나의 연약한 모습 가운데
      오늘 히스기야의 반응과 태도가 큰 도전이 된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른 이들을 정죄하기에 급급했던 내 모습이지만
      히스기야의 성숙한 믿음의 자세를 보며
      나 역시도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아뢰며,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께 맡기는 성숙한 신앙을
      소유하기를 사모하고 바란다.
      이러한 태도와 반응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운 역사를 경험케 할 것임을 믿으며,
      모든 상황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와 반응이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11-15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찬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 하니라(왕하19:19)"

      국가적 위기 앞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하나님을 비방하는 그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주시기를 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통해 결국 여호와 만이 홀로 하나님 이신 줄
      만국이 알게 해 달라고 구한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즉시 들으시고 이사야를
      통해 그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알게 하신다.

      히스기야는 적의 위험 앞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만을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는 기도를
      주님께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나의 안전과 평안만이 아님을 보게된다.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 나라 안에서 자연스럽게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나의 관심이 나에 것에만 집중되지 않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것에
      나의 관심이 집중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나의 삶을 통해 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 가운데 충만하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