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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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마가9장_땅의 나라가 뒤집어진 나라 ; 하나님나라
- 느헤미야강
- 2019-02-12
- 488 회
- 2 건
1. 1-29장: 산 위와 산 아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와 있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1절)고 말씀하신 다음
엿새 뒤에 세 제자만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늘 그랬듯이 기도하러 올라 가신 것입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세 제자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합니다.
기도 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이 변하고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3-4절).
제자들은 엘리야와 모세를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을 보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영적 세계의 신비입니다.
세 제자는 경외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베드로는 엉겁결에 초막 셋을 지어 모시겠다고 말합니다(5절).
그러자 갑자기 구름이 그들을 뒤덮었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7절)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엎어졌다가 고개를 드니 다시 현실로 돌아 왔습니다.
엿새 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 올 때 예수님은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세 제자는 그 말씀을 새겨 들었지만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10절).
그것은 유대교의 가르침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산 위에서 보았던 엘리야를 생각하고는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11절)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생각하시면서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답하십니다(13절).
산 아래에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아홉 제자에게 가니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타나시니 모두가 예수님께 몰려 왔습니다(14-15절).
제자들에게 무슨 일로 논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아들이 귀신에 사로잡혀 심한 경련과 발작 증세로 인해 고통 받아 왔는데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 했더니 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17-18절).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 없음을 탄식한 다음 그 아이를 데려 오라고 하십니다.
그 아이의 상태는 아주 심각했습니다(20-22절).
그 아버지는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22절)라고 간청했고
예수님은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23절)고 답하십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큰 소리로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 주십시오”(24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에게
“나가서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명하셨고
귀신은 그 아이를 심하게 발작하게 만들고 떠납니다(25-26절).
귀신에게서 풀려나 죽은 것처럼 누워 있던
그 아이를 예수께서 일으켜 세우십니다(27절).
예수께서 그 아이의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따로 다가와
왜 자신들은 그 아이를 치유하지 못했느냐고 여쭙니다(28절).
그러자 예수님은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29절)고 답하십니다.
제자들은 이미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을 경험했습니다(6:13).
그들은 과거에 있던 능력이 지금도 통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영적 능력은 한 번 소유하면 언제나 사용 가능한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충만할 때 드러나는 능력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하지 않으면 그 능력이 사라집니다.
예수께서 산 아래에서 권능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산 위에서 깊이 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일상의 현실)에서의 능력 있는 삶을 위해
산 위(영적 훈련)에 머물러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2. 30-37절: 가장 큰 사람
그곳을 떠나 예수님은 “갈릴리를 가로질러”(30절) 가십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그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31절)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예고하시는 말씀인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32절).
사실,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라 깨닫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은
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진담으로 하시는 말씀이고
뭔가 불길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묻기조차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슨 일로 길에서 다투었느냐고 물으십니다(33절).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34절)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알고도 모른 척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로 다투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 놓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35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 질서와 반대입니다.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큰 사람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구경하고 있던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앞에 세우시고는 껴안아 주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37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라는 말은
당시 사회에서 존재감을 인정 받지 못하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당시에 어린이는 사회 계층 중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사람, 강한 사람, 잘난 사람에게 줄을 대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낮은 사람, 약한 사람, 못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사람, 강한 사람, 잘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이 땅의 질서와 이토록 다릅니다.
3. 38-50절: 지극히 작은 한 사람
그 때 요한이, 낯 모르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에 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보고합니다(38절).
예수님께 칭찬 받을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그렇게 행한다면
막을 일이 아니라고 보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께 해를 끼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4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통제 안에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이 땅의 사람들의 습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네 편, 내 편이 없습니다.
진리 안에서 모두가 하나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죄짓게 하는 것”(42절)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42절)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존재감이 없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들 모두”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같은 값으로 대접받는 곳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누구를 대하든 진심으로 그리고 성심으로 대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 중 어느 하나라도 “죄짓게” 혹은
“넘어지게” 하는 것은 무겁고 무서운 죄입니다.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42절)는 말은
그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어법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 하라고 하십니다.
손이든(43절), 발이든(45절), 눈이든(47절)
죄 짓게 하는 것은 제거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것은
손도, 발도, 눈도 아닙니다.
마음의 죄성이 손과 발과 눈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마음에 있는 죄성입니다.
그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게헨나” 즉 하늘의 소각장에 버려지게 됩니다.
게헨나는 예루살렘의 쓰레기 소각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을 그것에 비유하십니다.
쓰레기 소각장에는 구더기들이 득실댑니다.
그것처럼 지옥에서도 끔찍한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48절).
또한 지옥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49절)입니다.
지옥은 생각하기 싫은 대상입니다.
성경에서 지우고 싶은 혐오스러운 장소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거북하고 불편하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은 말씀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지옥불에 대한 비유로 소금을 언급하신 다음,
예수님은 소금을 다른 비유로 사용하십니다(50절).
제자들은 소금처럼 짠 맛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배우고 그 정신대로 사는 것이
제자들이 내야 할 짠 맛입니다.
제자들에게 짠 맛이 든다면 그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높아지기 위해서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낮아져서 섬기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묵상:
하나님 나라는 땅의 나라가 뒤집어진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통하는 원리가 통하지 않고
이 땅에서 귀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더 이상 귀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 나라에 눈 떠야 합니다.
그 나라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세 제자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그 나라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야만 그 나라 사람처럼 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그 나라를 제대로 알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세 제자도 산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은 후에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 나라를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지를 두고 논쟁하는 미숙한 상태에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를 보고 나서는 서로 낮은 자리에 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 정성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짠 맛이었습니다.
우리의 짠 맛은 얼마나 진합니까?
짠 맛 나는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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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2-13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9:23-24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자녀가 질병에 걸려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것이다. 첫째 아이가 이제 막 걸음마를 할 때즈음 호흡이 일정하지 않아 입술이 퍼래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병원에 찾았더니 고사리같은 손에 커다란 주삿바늘을 꽂아두곤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렇게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허무하고, 허탈하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에게 무력감이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 아이는 건강해 졌지만 오늘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된다.
그 누구도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갔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안 계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탁했지만 제자들도 귀신을 내어 쫓아내지는 못했다. 그 때 예수님이 등장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했다고 말하는 아비를 꾸짖으신다. 너의 믿음 없음이 아들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아비 조차도 아들이 건강해 지리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누가 아들을 고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신 것이다. 이제야 깨달은 아비는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자신의 진심을 예수님께 내어 드린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고쳐 주신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마음은 진심이다. 믿음이 얼마나 크냐 작으냐가 아니라 믿음이 있냐 없느냐가 아니라, 내 진심을 숨김없이 예수님께 드렸는가? 이다. 믿음이 없다면 믿음 없음을, 흔드리는 믿음이라면 흔들리는 믿음을, 흠 많고, 죄 많은 모습이라면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예수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은혜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 나의 모든 진심, 연약함, 죄 많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작은 나를 불쌍히여기시고, 긍휼히 여겨주소서. 은혜 내려주소서. -
- 이형원전도사 19-02-13
-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귀신들린 아이를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내려 오신 후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했던 귀신을 내어 쫓으신다.
제자들은 자신들은 왜 귀신을 내어 쫓을 수 없었는지 예수님께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가 없음으로 그 대답을 하신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기도한 다는 것은 나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다.
또한 기도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나는 과연 얼마나 기도로 준비되어 있는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나 경험하며 살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통해 일하신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 언제나 주님 앞에 전심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이루어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