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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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목) 마가11장_열매가 있어야 진짜다
- 느헤미야강
- 2019-02-14
- 458 회
- 2 건
1. 1-11절: 나귀를 타신 이유, 예루살렘 입성
예수님의 일행은 드디어 시온 산 맞은 편 올리브 산에 이릅니다.
그곳에 베다니라는 마을이 있는데,
예수님은 그곳에서 제자 둘을 보내어 나귀 새끼 한 마리를 끌고 오게 합니다.
예수께서 비밀리에 어떤 사람을 통해 준비해 놓았던 것입니다(2-6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 나귀를 타시려는 것을 알고
나귀 등에 겉옷을 걸쳐 놓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나귀에 올라 타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십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다 펴기도 하고
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기도 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대관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셔서
마침내 다윗 왕국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암송하며 기도했던 시편 말씀
즉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9-10절)라고 외칩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메시아로서 그분은 그곳에서 권력자들에게 넘겨져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임을 상징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과 무리는 나귀를 타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나귀가 백마로 보였고
그들이 깔아 놓은 겉옷과 나뭇가지는 레드카펫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위대한 다윗 왕국을 회복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때 그분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으로 향합니다.
예루살렘이 예루살렘인 이유는 성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구석 구석을 다니면서 살피십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베다니로 돌아오십니다.
2.12-25절: 열매를 구하시는 주님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식전이어서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다가가십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었습니다.
아직 “무화과의 철” 즉 열매가 익을 때는 아니었습니다만(13절)
설익은 것이라도 열매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보는 순간
예수님께는 형식만 무성할 뿐 거룩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전이 생각 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난 밤 베다니에서 성전에서 본 것들을 생각하면서
잠을 못 이루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밤새도록 기도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일찍 일어나셔서 아침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성전으로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형식만 무성한 성전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가는 길에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는 곧 성전 종교에 대한 저주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십니다.
성전 본채 바깥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렸던 이 마당에는
성전 제사를 위한 매매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에 쓸 짐승을 엄격하게 검사했는데
그 검사에 통과하려면 성전에서 장사꾼들에게
제사용 짐승을 사는 것이 더 편리했습니다.
상인들과 제사장들의 배후 결탁이 있었기에 성전에서 파는 짐승들은
아무 문제 없이 검사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에 사용되던 동전에는 로마 황제나 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기에
성전에 헌금으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동전을 교환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심한 듯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을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었습니다.
또한 정해진 길로 다니지 않고
“성전 뜰을 가로질러”(16절) 다니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잠시 동안 성전 제사가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상인들과 제사장들의 부정한 결탁을
공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전 제사 자체를 중단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그분은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십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그들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예수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로 가셔서 쉬십니다(19절).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의 일행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가는 길에 어제 예수님께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것을 보고(20절) 베드로가 신기해 합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믿음과 기도에 대해 가르치는 계기로 삼으십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믿어라”(22절)고 말씀 하십니다.
그분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분에게 구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기도로 구한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받은 줄로 믿어”(24절)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기도 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24절)라는 말을
왜곡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기도나 응답 하지는 않으십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중에 어떤 사람과 불화한 일이 생각나면
그 문제부터 풀라고 하십니다(25절).
하나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는 기쁨을 경험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해야 합니다.
3. 27-33절: 예수님의 권한
예수님의 일행은 다시 성전에 가십니다.
성전 뜰 즉 이방인의 뜰에서 거닐고 있는 동안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께 와서
무슨 권한으로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킨 것인지 묻습니다(27-28절).
그들은 한 편으로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을 것이니 그 증거를 제시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걸어 넘길 구실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30절)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이렇게 답할 수도, 저렇게 답할 수도 없었습니다(31-32절).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답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이고,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답하면 무리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궁리 끝에 “모르겠습니다”(33절)고 답했고,
예수님은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답하십니다.
그들의 속셈을 아셨기에 이렇게 답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그 무슨 증거를 제시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으나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묵상:
우리의 믿음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많은 종교 행위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경건 생활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는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 모든 것이 열매를 향해 집중됩니다.
우리의 영적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기를 원하시는 사랑, 거룩, 정의 같은 열매를 맺기 위해
예배도 드리고 말씀 묵상도 하고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종교 소비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 종교는 거대한 소비 체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는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신실하게 영적 생활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영적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에 드린 예배는 한 주간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하고,
아침에 가진 묵상 시간은 하루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히,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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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2-15
- 마가복음 11장 23-24절의 말씀을 묵상 하면서 이 말씀을 몇가지 단어로 압축해 보았다. “이루어 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 “받은 줄로 믿으라”, “그대로 되리라” 이다.
다시 이 단어들을 재배열 해보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고,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가 된다. 조금 비약해서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기도가 1번, 의심이 2번, 되리라 2번이 문장안에 들어있다.
기도는 잘 한다. 새벽기도, 공예배 기도, 식사기도, 개인기도 등 여러시간을 쪼개어 기도한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한 의심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 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지만 혹시 안되면 어떻게 하지,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때마다 되리라, 된다.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나의 아버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되어 주신것이 너무 감사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구절에서 “의심”이 “되리라”보다 더 많이 기록 되었다면 시험에들 수도 있었겠지만 “의심”이 나올 때 마다 “되리라”라는 말씀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오늘도 내 연약한 마음을 삐집고 나와 “될까?”라고 의심할 때 마다 아버지께서 “되리라”말씀해주시는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
- 이형원전도사 19-02-15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그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예수님께서는 잎사귀가 있는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곳으로 가신다.
하지만 그곳에는 잎사귀 외에는 어떠한 열매도 없었다.
이를 보고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여 다시는 사람이 이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뿌리째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이 일을 신기하게 여긴 베드로가 이 말씀을 예수님께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열매 맺는 삶을 살길원하신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삶에 어떠한 열매도 없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그 열매를 맺는 일은 나 스스로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여 주실 때에
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믿음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삶을
통해 그 분의 뜻을 이루어가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해주실 줄 믿는다.
언제나 주님 앞에 믿음으로 구하고 또 그 구한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