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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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화) 마가15장_십자가에서 왕의 대관식을 하다

  • 느헤미야강
  •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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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0: 빌라도 앞에서

새벽이 되어 산헤드린의 의장인 대제사장이 전체 회의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 하기로 정합니다.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처했다는 것이 고발할 죄목이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그것은 반란죄에 해당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2)라고 묻자

예수님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라고 답합니다.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왕은 아니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더 분명한 대답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다른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

무고하게 고발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묘수를 찾습니다.

큰 축제 때마다 유명한 죄수 하나를 석방해 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바라바와 예수님 중에서

선택하게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유다 백성이 악명 높은 바라바 보다는

예수님을 택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 지도자들은 백성을 선동하여 바라바를 석방시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요구하게 만듭니다(13).

빌라도는 그 상황을 모면해 보려 했지만

결국 군중의 압박에 두 손을 들고 맙니다.

 

군인들은 십자가 형에 선고된 예수님을 총독 관저 뜰로 데리고 가서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운 뒤에,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면서”(17-18) 조롱합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왕으로서 경배 받으실 분이신데

이렇게 조롱을 당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 어떤 군인들은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치고, 침을 밷고,

무릎을 꿇고 그분께 경배합니다(19).

예수님은 실제로 그렇게 경배 받아야 할 분인데,

그들은 무참히 그분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야만성을 충족시킨 다음에야

예수님을 끌고 처형장으로 갑니다(20).

 

2. 21-47: 십자가 위에서

당시에 십자가에 처형될 죄수는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끌고 처형장까지 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너무도 혹독한 고문을 당하셔서

십자가를 끌고 갈 힘이 없었습니다.

도무지 안 될 것 같아 보이자 군인들은 구경꾼들 중에서

힘 있어 보이는 사람을 끌어다가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합니다(21).

그는 구레네(아프리카 북동쪽 도시)에서 살던 유대인으로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와 있던 시몬이었습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21)라고 명기한 이유는

마가가 이 복음서를 쓸 당시에

두 사람이 믿는 이들에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우연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다가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처형장은 골고다(‘해골이 많은 곳’)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십자가에서 처형된 사람들의 유골이

널려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그들은

예수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드렸습니다(23).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십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십자가는 공중에 세워졌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 때는 아침 아홉 시였고(25)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달려 있었습니다(26).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마태처럼 마가도 최소한의 단어로,

최대한 간략하게, 아무런 감정 없이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쓰자고 보면 얼마나 쓸 것이 많았을까요?

이 모든 절차가 완성되려면 적어도 두세 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것을 서너 문장으로 묘사하고 넘어갑니다.

자신이 전해 받은 대로 자세히 적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눈물 가득한 눈으로, 떨리는 손으로 한자 한자 적었을 마가를 생각하니,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차오릅니다.

 

예수님과 함께 두 강도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아하!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무나!”(29-30)라고 조롱합니다.

실제로 사흘 후에 그들이 말한 대로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 나십니다.

또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31)고 조롱합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것은 그들이 요구한 것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이적을 보여 주어도

믿을 수 없을만큼 마음이 굳어져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 세 시간 쯤 지나자 갑자기 어둠이 온 땅을 덮고는

오후 세 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33).

십자가 위에서 잠잠 하시던 예수님은 갑자기

엘로이 엘로이 레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십니다.

그것은 시편 221절을 사용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늘 암송하며 묵상하시던 시편의 기도 중

하나를 사용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여겼습니다(35-36).

그런 다음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십니다(37).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그 순간에 성전 내부에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38).

이 휘장은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만나는 공간인 지성소를 가리는 도구였습니다.

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르고 있던 장막을

하나님 자신이 손으로 찢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고 돌아가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처형을 책임지고 있던 백부장은 모든 상황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39)고 고백합니다.

그가 무엇을 보고 그런 고백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해

온전한 신앙 고백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가장 온전한 고백입니다.

 

그곳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에게 골고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들은 이 여인들입니다.

요한 외에 남자 제자들이 모두 떠나간 자리에

여성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은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운명 하셨고,

그분을 조롱하던 군중과 유대교 지도자들도 모두 흩어졌습니다.

날은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 예비일 즉 오늘로 하면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산헤드린 의원 중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를 찾아갑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형을 막을 수는 없었으나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고 싶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44)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보통 2-3일 혹은

일 주일 정도 고통 당하다가 죽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의 운명 사실을 확인해 주자 빌라도는 허락했고

요셉은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돌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합니다.

여인들은 멀리서 그 모든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묵상:

마가는 예수님의 마지막 재판과 처형 그리고 운명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이 여섯 번 나옵니다

(2, 9, 12, 18, 26, 31).

또한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 하면서

왕으로 경배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공을 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처형 당했음을 강조하는 한 편,

이면적으로는 예수께서 고난 당하고 죽임 당하심으로

진정한 왕이 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예수님이 왕의 자리로 오르는 대관식이었다 것입니다.

백부장이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 보고 고백한 것처럼

고난과 희생을 통해 우리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알아 보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 김성민목사 19-02-21
      “마침 알레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막15:21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라하는 언덕을 오르고 계셨다. 군인들의 채찍과 고문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몸은 이미 탈진 상태였다. 십자가를 지고 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때 로마 군인들은 지나가던 사람 구레네 사람 시몬을 지목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시몬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수 밖에 없었다. 로마군인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몬에게 축복과 영광이었다.

      한국교회도 누군가에 의해서 신앙을 갖게되는 신앙의 후손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모님의 손에 억지로 끌려 교회에 나와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축복과 영광이된다는 것이다. 억지로 메처진 십자가 이지만 그것이 시몬을 변화시켰듯이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자녀가, 가족이 축복과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억지로 메여진 십자가가 나에게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곳 나에게 축복과 영광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