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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목) 누가1장_하나님의 은혜는 순종하는 믿음에서

  • 느헤미야강
  •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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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38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고(4:14) 바울 사도의 동행자였다.

비록 그는 예수님의 행적을 친히 목격한 사람이 아니었고

또 성경을 기록한 유일한 이방인이었지만,

아마도 하나님께서 학문적으로 잘 훈련된 이방인을 통해서

복음서를 기록하게 하심으로써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보다 더 읽혀질 수 있는

복음서를 주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는 의사이기도 했지만, 그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필치나 접근방법을 볼 때

다분히 그는 역사적인 관점과 저술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특별히 데오빌로라는 특정인물을 위해서 쓰여졌는데,

각하라고 호칭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예수님과 복음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거나

복음을 초보적인 단계에서 배운 로마의 고위 관료였을 것이다(3~4).

누가복음이 기록되기 전에 이미 다른 복음서들은 

적어도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있었을 것이다(1~2).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서 배우고 들은 바를

더욱 확실하게 해주기 위하여 기록되었다(4).

늙은 부부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이 


누가복음 1장이 전하는 첫번째 사건이다(5~25).

이 늙은 부부는 둘 다 아론의 후손으로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였다.

성경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평가한다(6).

경건한 자들이었지만, 이 가정에도 문제는 있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였는데, 당시 사회에서 이것은 큰 수치였다.

어쩌면 이 노부부는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면서도

저들이 진정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라면 왜 아이가 없어?’라는

사람들의 비아냥을 견뎌내야만 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어찌 알겠는가?

 

당시 제사장들은 일년에 두 차례 일주일씩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감당하게 되어 있었는데,

사가랴의 차례가 왔고 그 중에서도 제비를 뽑아서 성소에서 분향하는 특권을

한 제사장에게 주게 되어있는데 바로 사가랴에게 그 제비가 뽑혔다.

분향을 마친 제사장은 성소에서 나올 때

아론의 축복으로 백성을 축복하게 되는데(6:24~26)

그 축복을 기다리면서 백성들은 성소 밖에서 제사장을 기다리곤 하였다.

그런데 사가랴가 분향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임하여

그에게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아들은 나실인과 같이 구별된 존재이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을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게 될 자이다(15~17).

사가랴는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이는 아마도 늙은 부부가 아이를 가진다는 것뿐 아니라

자기들이 그런 영광스러운 택하심을 입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가랴는 증거를 구하는데,

그 증거로 천사는 아이가 날 때까지 사가랴가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천사의 말대로 아내 엘리사벳은 임신을 하고 하나님을 찬미한다(24~25).

 

두번째 사건은 앞의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

늙은 부부가 아니라 처녀가 임신을 할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 고지다(26~38).

사가랴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6개월이 지나서 갈릴리 나사렛에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찾아왔다.

당시 정혼은 약혼의 개념이지만, 약혼은 이미 결혼과 동등한 것으로 여겨졌고

단지 육체적 접촉만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그러므로 정혼한 사람들은 이미 사회적으로는 부부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천사가 마리아에게 준 첫 마디는 은혜를 받은 자여라는 말이었다(28, 30).

그 은혜는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전갈이었다.

 

천사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할 것이고,

그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며

다윗의 위를 이을 자라고 했다.

마리아는 자기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가능하냐고 묻지만

천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할 것이고

그 나실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한다.

한 가지의 증거로 천사는 엘리사벳이 늙은 몸으로 임신한 것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혼한 처녀다. 정혼한 처녀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일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을 받았다.

이 일로 말미암아 일어날 결과는 자기 몫이 아니다.

그녀는 천사의 말대로 자기가 은혜를 받은 자임을 그저 받아들였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

이 모든 정황을 생각할 때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고백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임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은헤를 받는다는 것이 우리 삶의 최고의 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리아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그 말씀 앞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탄생에 대한 기사는 이런 마리아의 놀라운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자기 백성의 순종을 통해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억지로 원치 않는 자에게 올가미를 씌워서 일하지 않으신다.

철저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자발적 순종을 하는 자들을 통해서 주의 일은 이루어진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서두에 이 놀라운 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심과 죽으심의 구원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시각이다.

당신은 그런 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가?

 

 

2. 1:39~80 순종하는 작은 믿음을 무시하지 마라


본문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복중의 만남으로 시작해서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어두움 속에 빛나는 믿음의 사람들인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신앙 고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마리아는 천사의 증거를 따라 엘리사벳을 만나러 감으로써

두 어머니, 노파와 소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친척관계였다(36).

마리아의 문안을 들은 복중의 세례 요한은 뛰놀며 기뻐했다고 했는데(41,44)

이것은 아이가 모태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설명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15).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맞으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고

태중의 메시아를 향하여 주라고 고백한다(42~43).

엘리사벳은 메시아를 알아보고 찬미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의 순전한 신앙을 칭찬한다(45).

두 사람은 지금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한다(45).

이어서 그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가 기록되어있다(46~55).

마리아는 자신이 은혜를 입은 사람인 것을 이 찬양을 통해서 절절이 고백한다.

이 찬가는 어떤 이의 표현대로,

구약 성경의 인용문들과 암시들로 춤촘히 짜인 직물과 같다.’

그녀는 아브라함과 조상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을 향한 갈망을 드러낸다.

비천한 자들, 주리는 자들을 위한 구원 그리고 교만한 자들, 권세있는 자들

그리고 부자들에 대한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찬가는 마리아가 비록 어린 소녀였지만,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엘리사벳 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는 참 신앙과 경건을 갖춘 소녀였다.

마리아는 3개월을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엘리사벳이 때가 차서 아이를 낳자 사람들이 기뻐했는데 이는 14절의 성취다(58).

사람들은 이름을 사가랴라고 하자고 하지만

엘리사벳은 역시 성령의 은혜로 요한이라고 할 것을 말한다.

조상의 이름 중에서 선택해서 자손의 이름을 붙이는

유대인의 관습에 맞지 않는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사가랴에게 다시 묻게 되고

사가랴는 서판에 요한이라고 쓰자 곧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다.

그가 혀가 풀리자 마자 한 일은 하나님을 찬송한 일이었다(64)!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옆에서 보고 들은 자들은 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고(65)

세례 요한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66).

 

이제 사가랴의 찬송이 나온다(67~79).

사가랴 역시 성령의 충만을 입어 예언을 하고 있는데,

그의 찬양 역시 놀라운 구약 성경의 메시아 예언에 초점을 맞출 뿐 아니라

그 약속들로 가득한가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윗이 하나님을 가리켜 구원의 뿔이라고 한 것은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분임을 그는 말한다(69).

그 역시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맹세로 거슬러 올라가고(73)

그 메시아를 준비하기 위해서 온 자기의 아들 요한의 사명을 말하고 있다(76~77).

사가랴가 말을 못하고 보낸9개월 여의 시간에 그는 무엇을 했겠는가?

물론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했겠으나

그는 구약의 예언의 말씀들을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연구했겠는가?

그의 그런 영적 지식이 이 짧은 찬미 속에 가득히 드러난다.

 

요한은 자라며 심령이 강해졌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적인 선지자로 등장하기까지

빈들에 있었다는 표현은 매우 특이하다(80).

그는 무엇보다도(육체보다) 심령이 강해졌다.

그렇게 되지 않고서는 그 백성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빈들에 있었다 함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가 하나님에 의해서 길러졌다는 것,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삶으로 훈련되었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 빛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는가?

엘리사벳이 그렇고 사가랴가 그렇다. 마리아는 또 어떤가?

그들은 다 말씀의 사람들이었고,

순전한 믿음으로 그 말씀 앞에 반응하는 사람들이었다.

일상적인 순종의 믿음이 없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큰 일을 순종하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들의 작은 순종의 믿음을 하나님은 보셨고, 그들에게 찾아가셨으며

그들에게 구원 역사의 최고의 자리에 서는 영광을 주셨다.

순종하는 작은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채우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훈련과 지식은 어떠한가?

그들은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말씀의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하나님의 그릇들이 준비되어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역사를 이 땅에 시작하셨다.

    • 이형원전도사 19-02-26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8)"

      마리아의 믿음을 보게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일이 자기에게 어떠한
      어려움을 가져다 주게 될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혼한 그녀가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은 그녀의 목숨을 요구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는 이 고백 속에 그의 신앙이
      어떠한 믿음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잘 보게 된다.

      믿음을 보여야 하는 순간에 나의 것을 먼저 계산하면 결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다.
      그 순간 우리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계산하고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일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이질 것이라는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나는 과연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의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먼저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래서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