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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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누가5장_자기의 틀을 개트리고 주를 따르라
- 느헤미야강
- 2019-02-26
- 450 회
- 2 건
1. 네 제자를 부르심(1-11)
주님께서는 사역 초기에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셨지만,
아마도 제자들은 종종 틈나는 대로 가족들을 부양하거나 자기들의 경제적 필요에 대한
염려를 가지고 어부의 일을 하기 위해서 돌아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허탕을 친 아침에 주님께서 오셔서
시몬의 배를 이용하여 가르치신 후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던 게네사렛으로 가십니다.
호숫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자 예수님은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 중에
시몬에게 배를 잠시 쓰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시몬을 알고 있었습니다(4:38).
그분은 배를 타고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3절).
말씀을 다 마치신 다음 시몬에게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4절)고 권하십니다.
그러자 시몬은 지난 밤을 새워가며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고,
하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한 번 해 보겠다고 답합니다(5절).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혀
다른 어부들까지 불러 끌어 올려야 했습니다.
그물을 끌어 올리자 잡힌 물고기의 무게로 인해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시몬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8절)라고 말합니다.
동료 어부들은 잡아 올린 고기들로 인해 좋아서 정신이 없는데,
시몬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치료할 때 그리고
그 집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칠 때만 해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무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는 “이게 누굴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
시몬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했다 싶을 때 가장 먼저 압도하는 감정은 죄의식입니다.
그분의 절대 거룩을 대면하면 우리의 절대 죄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10절)라고 말씀합니다.
물에서 고기를 잡아 올리듯 죽음의 물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들을
건져 올리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에 시몬과 친구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예수님에게 본 것에 비하면 배와 그물은
아무 가치도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식은 특이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언제 직업을 버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따를 것인지를
강요하시거나 재촉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고기를 잡는 일에서 언제나 실패만을 경험하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주님은 엄청난 고기를 잡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베드로로 하여금 자기의 불충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은 이제 어부의 직업을 완전히 버릴 것을 종용하시고,
새로운 부르심, 사람을 낚는 어부로 그들을 부르십니다(10).
드디어 베드로와 친구들은 자기들의 전직을 완전히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고도 쉬운 한 번의 결정으로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고 많은 가르침을 들을 수 있지만,
주님이 누구신지를 개인적으로 제대로 깨닫는 순간까지는
결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깨달음이 있었는가?
그 깨달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2. 나병환자의 치유(12-16)
예수께서는 부지런히 동네를 옮겨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어느 동네에 계실 때 나병 환자가 그분을 찾아 옵니다(12절).
당시 나병 환자들은 격리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건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몰매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목숨을 건 모험을 한 셈입니다.
그는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12절)라는 말로
자신의 믿음을 보였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13절).
예수께서는 그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14절).
그래야만 그는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병으로 인해 그는 사회적 죽음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더욱 퍼져 나갔고
많은 병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외딴 데로 물러가서 기도하셨”(16절)습니다.
그분은 나설 때와 물러날 때, 일할 때와 기도할 때,
함께 있을 때와 홀로 있을 때를 분별하며 사셨습니다.
이런 기도의 삶은 주님의 반복되는 삶의 습관이었습니다.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고 그를 고쳐주신 사건(17~26).
주님은 한 집에서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주고 계셨습니다.
거기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교법사)들이 함께 있었고 운신할 틈이 없었습니다.
한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자기들의 병든 친구의 치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붕을 뜯어 친구를 침상 채 내리는 모험을 감행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고,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20).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교법사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심을 고의적인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병을 고치는 술사가 아니라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방식으로 당신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천천히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서 스스로 나타내고 조절하십니다.
3. 레위 마태를 제자로 부르심과, 바리새인, 서기관들과의 논쟁(27~39).
얼마 뒤에 예수께서 세관을 지나시는데
그곳에 레위라는 사람이 앉아서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27절).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가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셨고,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따라 나섭니다.
당시 세리는 부와 권력을 잡기 위한 가장 좋은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내면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서 무엇인가를 보았을 것이고,
레위는 자신이 찾고 있던 무엇인가를 그분에게서 보았을 것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벌입니다(29절).
그는 이미 많은 부를 축적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집에는 세리들과 다른 친구들이 모여들어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30절)라고 묻습니다.
당시에 식탁을 함께 한다는 말은 그 사람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세리는 하나님께 ‘대표 죄인’으로 취급되었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소홀했던 사람들을 “죄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도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상에서 먹고 마시니 의문이 생겼던 깃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31-32절)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만일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예수님은 상관 없는 존재가 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 때 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금식에 대해 여쭙니다(33절).
금욕적인 경향이 강했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으로 유명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한 주간에 이틀 금식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를 비유로 삼아 답하십니다(34절).
지금은 혼인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희년이 선포되고 있는 지금은
축하하고 감사할 시기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35절)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금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고난 받고 죽게 될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더 말씀하십니다.
헌 옷을 수선하기 위해 새 옷감을 잘라 붙이는 사람도 없고,
새 포도주를 헌 포도주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36-38절).
그것처럼 당신을 통해 시작되고 있는 하나님의 희년의 역사를
과거의 사고 방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묵은 포도주 맛에 인이 박혀서
새 포도주를 입에도 대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39절).
묵상.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유대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 즉 복음을 주시는 것임을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낡은 옷을 고치려고 새 옷을 찢어서 붙이는 사람이 없고,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 낡은 포도주 부대를 쓰는 사람이 없듯이,
유대교의 낡은 전통 속에 머물러 그 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한,
그들이 결코 주님이 주시는 복음의 은혜를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자기가 배운 종교와 지식의 형식과 틀 속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맞추려고 한다면 결코 복음의 은혜를 입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의 틀을 깨뜨리고 복음의 은혜 앞에 서는 자만이
깨닫고 누리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나의 틀, 나의 사고, 나의 논리, 나의 경험의 틀에
복음을 꿰어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주여, 제게 복음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그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구하며 순전함으로 나아가는가?
내가 복음의 은혜를 알아 누리고자 한다면
내 자신의 틀과 ‘내가 옳다’는 판단의 교만을 먼저 깨뜨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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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2-27
-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11)"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오늘 말씀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자는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임을 경험한 자
는 세상의 것이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제자들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욱 값진 그 일을 위하여
자기 생업을 위해 필요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제자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났고 그 분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지만 과연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를 만한 믿음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 것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세상에서의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일 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성공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위해 노력하는 삶을 통해 그 분의 뜻을 이루어 가게 되는 줄 믿는다.
나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자리하길 원한다. 그래서 세상적인 욕망과 고민에서
벗어나 주님을 위한 삶을 위한 고민과 그를 향한 열정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
- 김성민목사 19-02-27
- 예수님께서 죄인을 불러 회개키 위해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 말고 의인이 이 세상에 있는가?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을 불러 회개키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31절의 말씀을 보니 의사는 병든 자라에게라야 쓸데가 있다고 한다. 맞다. 건강한 사람은 의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또 몹시 아프지만 자신이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도 역시 의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지금 아픈가? 나는 지금 죄인인가? 내가 죄인이지 않으면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회개할 수 없다. 만약 예수님 없이 회개한다면 그것은 거짓 회개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진정한 구주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나를 불러주실 것이고 나를 회개케 하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임을 나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