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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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토) 눅15장_하나님의 기쁨, 회개
- 느헤미야강
-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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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0절: 잃어 버린 것을 찾는 기쁨
누가복음 15장은 잘 알려진 세 개의 비유로 유명한 본문입니다.
이 세 개의 비유는 오직 하나의 메시지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1~2절의 서론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이 가득하여 예수님이 죄인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비난에 대해서 주님은 메시아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세 개의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첫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우리에 있는 양99 마리가 있지만
잃어버려진 양 1 마리를 찾으시는 분입니다.
숫자에 만족하거나 숫자로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목자처럼 자기 양을 반드시 찾으십니다.
찾은 후에는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때 일어날 일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비유를 마치는 7절에 드러나는대로 회개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 보다 더하리라(7).”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회개해야 할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잘 하고 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결과, 회개해야 할 사람들은 저기 있는 죄인과
세리나 창기들이라는 생각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배어있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해야 할 자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나 잘 났다고 여기는 수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회개입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기쁨입니다.
둘째 이야기는 한 여인이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던 중,
한 드러크마를 잃어버린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잃은 드라크마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체념하지 않고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그리고 찾은 후에 잔치를 벌입니다.
역시 결론은 죄인 한 사람의 회개가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10).
그 사람이 얼마나 가치있는가,
그 사람이 얼마나 교양이 있는 사람인가가 사회적 기준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시는 기준은 회개입니다.
그 사람이 회개하였는가?
당신은 회개한 사람인가?
회개의 문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왔는가?
2. 11-32절: 잃었던 사람이 회복되는 기쁨
셋째 이야기는 탕자의 이야기 혹은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가 말한
회개의 본질을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두 아들 중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서
먼 나라에 가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파산입니다.
둘째 아들은 인간적으로 용납 받을 수 없는 인간입니다.
그가 먼 나라에서 고생하던 중 아버지와 집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생각이 그를 아버지 집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보기 시작했고 아마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18~19).”
자신의 존재, 자신의 파산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그는 이 생각에 이어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다.”
생각이 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이 우리에게는 많은지요.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먼저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것이 회개하는 아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는 자기가 생각한대로 아버지께 말합니다(21).
그는 실패한 자요, 파산한 자다. 그러나 아버지의 판단은 다릅니다.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라고 말함으로써 그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라고 함으로써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킵니다.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함으로써 그가 종이 아니라 아들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임으로써 아버지의 기쁨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동생이 돌아와서 아버지가 기뻐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던 맏아들에게는 불평과 원망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회개한 사람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차입니다.
회개한 사람만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개한 사람만 아버지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경험적으로 알고
공감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머리로 알고 아버지를 판단하고
그는 기뻐하는대신 불평으로 반응합니다.
바로 이 맏아들로 대변되는 자들이 바로1~2절에서
예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묵상
오늘날에도 교회의 양상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회개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각양 종류의 기득권, 직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회개하는 한 사람을 향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치 기준입니다.
회개한 사람만 하나님의 기쁨을 압니다.
그것을 위해서 산다. 그것을 구합니다.
그 일이 교회 안에서 진정으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이런 은혜를 주의 교회에 풍성하게 부어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나는 회개한 사람인지?”
회개하고 주님께 나온 사람은 오늘도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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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3-10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20
누가복음 15장은 잃어버린 양, 드라크마, 아들의 비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많은 비유를 들으시면서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아들의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은 얼마나 그 아들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심정이 이해가 된다. 저 멀리 아들인 것 같아 쫓아가 보면 아들이 아니었던 적이 너무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아들을 만나 목을 부등켜 안고 엉엉 눈물을 보이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나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탕자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고 있지는 않은가? 또 아버지 하나님을 문밖에서 애태우며 기다리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 처럼, 한 드라크마를 찾는 주인처럼, 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처럼 기다리신다. 이젠 하나님 아버지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겠다. 더이상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아들로써 의 모습으로 말이다. -
- 이형원전도사 19-03-12
-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15:2)"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하셨다. 그들에게 다가가셨고 또 그들이
다가옴을 막지 않으셨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이 되어주셨고
특별히 세상의 소외된 자들에게도 복음이 되어 주셨다.
그러나 정작 종교지도자라고 스스로 여기는 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여러가지 비유를
통하여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신다.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하고 또 정죄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정죄하기 보다 그들이 그 죄에서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에게는 무엇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앞서 있었음을 보게된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정죄할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그 사람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 회개 하고 돌아왔을 때 누구보다 기뻐할 수 있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내 안에
있기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