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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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화) 눅23장_예수님에 대한 판단

  • 느헤미야강
  •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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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으심에 대한 기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변에 수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판단을 피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말의 고백이든, 행동과 태도로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리라고 표현된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1).

우리는 이들이 예루살렘 거주자들인지,

유월절 순례자들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빌라도의 관사에까지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짓 증거로 고소하고(2)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외친 사람들입니다(18,21,23).

그들은 거짓의 사람들이고, 주님의 말씀대로 마귀의 자식들입니다(8:44).

그들은 십자가에까지 따라와서 관원들과 군병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35~37).

 

사도신경에 그 이름이 등장하여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악명 높은 빌라도가 나옵니다.

그는 사실 세 번이나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바르게 판단을 했습니다(4,14,22).

그래서 더욱 우리는 그에 대해서 동정적이 됩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개인적 판단을 가졌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내린(무리들이 내린 결정이 아니라 총독 빌라도가 내린 결정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형 언도입니다.

결국 정치인인 그는 자기 개인의 판단과 양심에 따르기 보다

다수의 편에 서서 악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룟 유다와 함께 인류 역사에 가장 비참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23~25).

 

그 다음 인물은 분봉왕 헤롯(안디바)입니다.

그의 반응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놀랍습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8a).”

 

어느 누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했던적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가 이렇게 반응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8b).”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반응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는 음란한 자였다. 정한 마음이 없는 자의 전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상대 조차 않으셨고(9),

헤롯은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하여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습니다(10~11).

그는 빌라도와 원수였지만, 예수님에 대한 판단 때문에

빌라도와 이날에 친구가 되었다는 말씀은 예리하게 보여줍니다(12).

영적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서 원수들은 친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 십자가를 대신 져야 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등장합니다(26).

어찌 보면 그는 운이 나쁜 사람입니다.

마가복음은 그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자세히 주고 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데,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그의 아들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16:13).

사도는 특별히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진 사건은 그의 집 안에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날의 그 사건은 특별한 은혜였고

시몬은 못박혀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보고 믿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골고다로 향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가슴을 치고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와 남자들도 있었습니다(27).

이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거짓 증거로 고소한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동정적인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동정이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으심은 주님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길 것은 요구하는 사건입니다.


어떤 인간도 이 일이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고

믿음의 자리에 가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신 후에 그 일을 다 보고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간사람들도 있습니다(48).

소위 구경군들이었습니다.

가슴을 두드린 것이 슬픔의 표현이기는 했지만,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양편에 달린 행악자들이 등장합니다(32).

한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습니다(39).

다른 한 사람은 그를 꾸짖어 말합니다.

이 사람의 말은 그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40)?”

그는 비록 행악자였지만, 십자가에서 처형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41).” 


그는 자기 죄를 인정했고 예수님의 의로움도 알았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42).”

그는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구원의 여부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자기 의로 구원의 문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비록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구원을 얻은 행운아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처럼 온전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도 드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

복된 구원의 선언입니다.

이 사람은 행복하게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가장 무서운 고통과 죽음을 당하시는 그 시간에 말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책임자였습니다.

이 모든 일을 옆에서 자세히 보았던 이 사람은

마지막에 주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다 들을 수 있었고

그 태도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47).

그는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온전한 신앙의 고백이었고

그가 후에 예수님을 믿게 된 초대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면,

그는 예수님을 죽이고 복을 얻은 거의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 외에 성경은 예수의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49).

이들 중에는 8장에 언급된 이들,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던 여인들이 있었을 것이고(8:2~3)

24:10에는 그 여인들의 이름이 다시 기록되고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십자가의 자리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이들은

초대교회의 신실한 첫 성도들이 되었다는 것을

사도행전 1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1:14).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신 후에

요셉이 시신을 묘실에 안치하는 것을 보았고,

장사를 위하여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였고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새벽에 무덤으로 나아간 신실한 제자들이었습니다(23:55~24:1).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는 공회원이었으나 예수님을 정죄하는 결의에

동의하지 않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50~51).

무엇보다 그에 대한 성경의 판단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는 사실입니다(52). 


이런 점에서 그는 누가복음의 초두에 등장하는

시므온이나 안나와 같은 신앙의 인물입니다.

다만, 그는 숨겨진 주님의 제자였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서

믿음의 용기를 얻게 된 인물입니다.

그는 용감하게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고

자기 묘실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들은

이 절대 절명의 시간에 다 도망가서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의외의 믿음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을.

 

날이 이를 것입니다(29).

그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두려워서

산들이 자기 위에 무너져 죽게 해달라고 외칠 것입니다(30; 6:15~17).

그 일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가졌는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가?

예수님 옆에 달려 구원받은 행악자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보고 신앙을 고백했던 백부장처럼...,

예수님을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와서 십자가의 자리까지 따라갔던 여인들과 같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용기를 드러낸 아리마대

사람 요셉 같이...

그들과 같이 행했는가로 판단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나는 어떤 편에 있는가?


    • 김성민목사 19-03-19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우는 큰 무리의 여자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 무리를 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유는 그 다음 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날을 위해서이다. 그 날은 예수님의 심판의 날일 것이다. 그 날에 우리가 예수님곁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나와 자녀들을 위해 울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울며 기도하는 것은 그만큼 슬프고 간절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와 자녀들이 심판에 날 예수님 곁에 서있지 못한 것을 상상해 본다면 너무 안타깝고 지금 당장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긴급함이 우리 마음에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자녀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슬피 울며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에게 은혜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사도 바울처럼 만나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분명히 믿는 것은 자녀를 위한 눈물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은 다는 것이다.
      오늘도 눈물 흘려 간절히 기도 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또란 나와 자녀들이 늘 십자가 곁에, 예수님곁에 서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 이형원전도사 19-03-21
      "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눅23:26)"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이 등장한다.
      그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호위 군병들에 의해
      강제로 그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 십자가가 무겁고 힘든 짐이었겠지만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그가 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고 특히 사도바울에게 매우 큰 도움을 되었음을
      볼수 있다.

      지금 지고 있는 짐이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그것을 잘 감내해 나가면
      어쩌면 그 짐이 나를 지키고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된다.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내가
      고난으로 여기고 힘들어 하는 것들이 나의 믿음을 든든하게 만드는 순간이 너무나도
      많이 있음을 보게된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때로는 십자가를 짐 같은 고생이 따른다해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