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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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토) 요한3장_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 느헤미야강
-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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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절: 구원의 길
니고데모는 율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지도자”(1절)였다는 말은
유대인 자치 의회 산헤드린 의원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율법을 연구하고 준수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에 따라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에”(2절)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산헤드린 의원이 이름 없는 전도자를 찾아가는 것은
적잖이 체면 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찾아온 것입니다.
종종 어떤 학자들은 니고데모가 성실한 사람이었기에
낮에 자기 일에 충실하고 밤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밤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바를 이해하면
다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니고데모의 내면에 있던 어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는 율법적인 의를 추구했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밤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 먼저 칭찬하는 말을 건넵니다(2절).
하지만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가 찾아온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3절)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다시 나다”는 말은 “위로부터 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5절)고 답하십니다.
다시 나는 것, 위로부터 나는 것은 곧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을 말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말은 “물 즉 성령으로 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육신이 어머니의 모태에서 양수로 지어지듯,
인간의 영은 성령이라는 물을 통해 빚어집니다.
그래서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6절)라고 말씀 하십니다.
육신적으로 태어나는 것과 영적으로 새로 지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마치 바람의 현상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알 듯,
우리 안에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성령의 임재를 알 수 있습니다(7-8절).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는 일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9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열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인자”(14절)이신 당신도 들려 올려질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들어 올려진 뱀을 본 사람마다 구원을 얻은 것처럼,
십자가에 들려 올려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멸망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독사에 물려 모두 죽어가고 있던 것처럼,
모든 인류는 죄의 독에 오염되어 죄악을 즐기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구원을 얻을 방도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인간의 본성이 너무도 타락해 있습니다.
자력 구원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외부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오지 않는 한 희망은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이유입니다(16절).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닙니다.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심판과 불행은 인류가 스스로 어둠을 선택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 운명을 피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도록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믿는 것이 곧 성령으로 나는 것이요 다시 나는 것입니다.
22-36절: 세례 요한의 증언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한 동안 세례자로 활동하셨습니다(22-26절).
그러자 세례 요한에게만 몰리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두 지도자 간에 묘한 경쟁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그 사실을 스승에게 알립니다(26절).
그러자 세례 요한은, 그것은 경쟁할 일이 아니라고,
메시아가 오셨으니 자신의 때는 이제 끝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30절)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 자신의 명성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산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자신의 본문을 알고 자신의 때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매우 중요한 덕입니다.
이어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해 증언합니다(31-36절).
묵상: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있고 그 결과로
영원한 멸망의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말은
믿지 않은 까닭에 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를 기준으로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냥 두면 모두가 멸망에 이릅니다.
인간이 죄를 선택하고 어둠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멸망의 운명에서 우리를 건지시려는 뜻이었습니다.
믿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길을 인정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은 멸망의 운명에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속은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의지하고
믿는 길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모든 믿음을 내려 놓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때 비로소 그분의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듭니다.
그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두 종류의 사람 밖에 없습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것은 지금 내가 주님에 대하여 가진 태도가 결정합니다.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주님을 즐거워하십니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지 우리는 오직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들입니다.
내 힘으로 되는게 아니기에 우리는 은혜를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듭난 자라면 절대 은혜에 대한 무한 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았다면 거듭남의 은혜를 주시도록 엎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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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3-25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시 태어난 다는 것은 엄마의 뱃속에서 출산되는 육위 다시 태어남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 진리를 따르며 빛가운데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성도로써 거듭나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함으로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거듭나기 위함이다. 거듭남은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이다. 예수님께서 홀로 가신 그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분명한 정착역이 있음으로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한걸음 한갈음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야 하겠다. -
- 이형원전도사 19-03-26
-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30)"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사람들이 세례를 베푸는 예수님께
다 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오늘의 말씀에 나온다.
요한에게 올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의식하여 요한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이에 대하여 30절의 말씀을 통해서 명확하게 이야기 한다.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명은 그 분의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이고 이제 그 분이 오셨기
때문에 자신은 쇠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혹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되
자신에게도 그러한 영광의 작은 부분이라도 돌아오길 바란다.
하지만 요한은 철저하게 자신은 쇠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예수님이 흥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있는 자만이 그리고 자신보다 그 사명이 더 중요한
사람만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감추고 오직 주님만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요한의 이야기 처럼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쇄한다 할지라도 기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주님의 종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