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3.27(수) 요한6장_생명의 빵
- 느헤미야강
- 2019-03-27
- 485 회
- 2 건
요한 6장_영원히 살게 하는 빵
1-21절: 두 개의 표징
유월절 가까웠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있는 산에 오르십니다.
많은 무리가 그분에게 모여 들었고
예수님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들을 먹이십니다.
그곳에는 남자만도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적은 음식을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그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14절) 즉 메시아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 믿음은 삽시간에 군중 사이에 퍼져 나갔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그 분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은 산 속으로 몸을 피하십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메시아로서 예수님이 하실 일과
무리가 메시아에게 바라는 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향합니다.
예수님은 아직 산 속에 계십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호수 한 가운데 이르자 갑자기 돌풍이 불어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 오십니다.
제자들은 유령을 보고 있는 줄 알고 두려워 떨었고,
예수님은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20절)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성경을 알고 있던 유대인이라면 “나다”라는
말의 의미를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떨기나무 사이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름을 알려 달라는 모세의 청에 대해 주신 답이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라는 번역은 “나는 나다”라는 뜻입니다.
더 줄이면 “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다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은 당신의 신적 신분을 드러내 보여 주신 것입니다.
22-71: 생명의 빵이신 예수
이튿날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생명의 빵에 대해 긴 설교를 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무리에게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26절)이라고 일침을 가하십니다.
“표징을 보았다”는 말은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베푸신 이적을 통해
그분이 누구인지를 깨달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적을 보고 신기하여 더 많은 이적을 보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27절)고 하십니다.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만 붙들려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28)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29절)라고 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구원자로 보내셨으니
그분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아들을 믿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아들을 믿어야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분을 믿을 수 있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30-31절).
모세가 만나를 먹게 한 것과 같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하루 먹고 끝나는 만나가 아니라 영생하게 하는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33절).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이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34절)라고 구합니다.
물질의 빵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라고 답하십니다.
지금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육신의 허기와 갈증을 채울 물질의 빵이 아닙니다.
존재적 허기와 갈증을 채워 줄 영적인 빵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은
곧 생명의 빵과 생명의 음료를 얻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말을 듣고 분개합니다.
그가 요셉의 아들인 것을 뻔히 아는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그렇게 느낄 만합니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는 더욱 자극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새상에 생명을 준다”(51절).
유대인들은 이 말씀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자신의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라니!
그러자 예수님은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55-56절)고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을 압박합니다.
예수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말씀은 참을 수 없는 망발입니다.
예수님이 제 정신을 잃지 않고서야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는 다른 의미가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끝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등을 돌립니다.
유대인들이 떠나가자 제자들 중 여럿이
“이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고 불평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에 관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63절).
예수님은 당신의 육신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믿는 것에 대해 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그분을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먹는 그것이 나의 육신을 만드는 것처럼,
믿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먹고 그분의 영을 마심으로써
그분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이 내 안에 거하고
그분이 나를 통해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고,
그 생명은 영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곁에 남아 있던 열 두 제자에게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고 물으십니다(67절).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68-69절)라고 답합니다.
묵상:
믿는 것은 예수님을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에 음식과 음료가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도 음식과 음료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음료가 우리의 육신을 형성하듯,
우리가 먹고 마시는 영적 음식이 곧 우리 자신이 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영적 활동은 예수를 먹는 과정입니다.
예배도 그렇고, 말씀 묵상도 그렇고, 찬양도 그렇고, 기도도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먹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십니다.
내 생각과 지향과 뜻과 감정이 그분의 것이 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인생의 낙을 찾아 두리번 거리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의미와 기쁨이 내면에 들어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영생을 맛보며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 이전글 3.28(목) 요한7장_ 선입견이 가지는 위험 19.03.28
- 다음글 3.26(화) 요한 5장_아버지의 권세를 가진 아들 19.03.26
-
- 김성민목사 19-03-28
-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6:28-29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 어렵고,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린시절 목회를 하시는 아버지를 도와 교회 청소를 도와드린 일이 있다. 놀고싶은 것이 당연할 나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버지의 명령 때문인지 하기 싫은 청소를 꿋꿋이 했던 생각이 난다. 이렇게 억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일까? 지난 일을 돌아보면 나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다고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 안에 성령님이 말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도 나의 믿음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죄 가운데 있을 지라고 예수님의 이름을 찾았다. 사실 거창한 하나님의 일은 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예수님의 이름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조금씩 지켜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이름만을 부르며 그 말씀을 지켜가려 할 때 반드시 함께 해 주시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믿는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
- 이형원전도사 19-03-29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7)"
오늘의 말씀에는 오병이어의 사건이 기록되고 있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잘 못된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자 한 것은
그들이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다.
자신의 필요만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작은 어려움이 찾아와도
예수님을 쉽게 떠나게 된다.
오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는 무리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자 그 무리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 한 자들은 열두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물었을 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는데 어디로 가오리까 라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원한다. 그 어떤 상황과 이해할 수 없는 말씀 속에서도
여전히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께 있음을 믿고 그 분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길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열두 제자처럼 예수님과 늘 동행하며 그 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 분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