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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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목) 행전4장_성령에 사로잡혀야 할 이유

  • 느헤미야강
  • 2019-04-18
  • 4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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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할 만큼

성령님께서 사도들과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신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들이 공회 앞에 섰을 때와

공회의 위협 속에서 기도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이해하는 열쇠는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본문에 있는 교회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으로 말미암아 베드로와 요한은 잡히고 공회에 서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예언하신 대로입니다(13:9).

바로 두 달 여전에 예수님을 정죄했던 바로 그 사람들 앞에서 서게 되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때는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였지만 지금은 변했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를 회복시켜주셨고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여 사도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말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8).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그 무서운 공회의 권위 앞에서

바로 그들이 정죄하여 죽인 예수 그리스도,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앉은뱅이가 건강하게 되었다고 담대히 증거합니다(10).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12).

베드로의 담대한 선언과 병 나은 사람 앞에서 공회원들의 입이 닫혔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거나 전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고 놓아주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공회원들에게 전한 말씀은 교회역사 속에서

유사한 상황 속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용하고 힘을 얻었던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스도의 변호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증인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사가 아니라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고 들은 확신이 없다면

어찌 이 증인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열쇠는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사도들은 석방되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교회는 이미 이 일로 인하여 남자만 5천명이나 더 증가하였으니(4)

그 가족들을 추산한다면 벌써 25천명 이상의 대형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은 교회는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주재(Sovereign Lord)께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분별하면서 기도했습니다(24~30).

 

그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취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마칠 때 그들이 모여있는 곳이 진동하였고

(이것도 놀라운 기적의 현상이었고 하나님은 이렇게 그들을 확신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밖으로는 복음을 전하고, 안으로는 사랑이 풍성해져 갔습니다.

먼저, 그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들도 큰 권능으로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여

온 교회가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더욱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 사랑하되,

물질을 나누는 실제적 교제가 풍성하게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재산을 바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초대교회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이 그의 특성을 보고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그의 격려하고 위로하기를 잘 하는 성품, 자기는 숨고

다른 사람을 앞세우는 성품을 보고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

격려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때에 보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시고 일으켜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입니다.

우리는 4장에서 성령의 충만을 입은 사도와 성도들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날 당신은 이런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고 사십니까?

그 결과로 당신의 삶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십니까?

용기가 없거나 배운 게 없어서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충만은 반복적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는 은혜이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욱 담대하게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이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 김성민목사 19-04-18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행4:33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였다. 그것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령충만함을 입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부활 신앙이다. 오직 예수님만 통하여 죄사함을 얻어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명백한 사실을 믿어 날마다 큰 은혜를 받아 신앙을 지속해야 한다. 이 모습이 초대교회의 모습이고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신 모습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며 듣는 내가 되어 날마다 은혜를 덧입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9-04-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

      나면서 걷지 못한 자를 고친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제자들을 주목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베드로는 자신들을 주목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전하게 된다.
      이 일로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을 잡아서 이튿날 까지 잡아두게 되었지만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튿날 그 지도자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위협을 한다.
      하지만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옳다는 말로써 그들의 말을 반박한다.
      이러한 담대한 모습은 얼마 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또한 자기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또한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이들에게 맡겨진 사명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명이 있는 줄 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가운데 이루어 가는 것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세상과 타협하고 그 사명을 지키지 못한다.
      나에게도 이 사명을 이루며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이 있기를 원한다.
      이것은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주님의 종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