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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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목) 행전10장_경계선을 넘다
- 느헤미야강
- 2019-04-25
- 528 회
- 2 건
누가는 계속하여 베드로의 행적에 초점을 맞춥니다.
베드로의 초기 행적 중에 가장 의미 심장한 사건은
고넬료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백부장으로서 유다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1절).
그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으로서 경건하고 선하게 살았습니다(2절).
그가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천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천사는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불러 오라고 지시합니다(3-6절).
고넬료는 부하 병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욥바로 보냅니다.
그들이 욥바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봅니다(9-16절).
하늘로부터 온갖 짐승이 담겨 있는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13절)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 보자기 안에는 율법이 부정 하다고 규정한 동물들도 있었기에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15절)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환상은 세 번이나 반복되고 끝났습니다.
환상이 그친 후에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베드로에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당도합니다(17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접촉하는 것에 대해 꺼렸기에
베드로도 그들을 집에 들이기를 잠시 주저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그들을 만나 보라고 베드로를 밀어 내십니다.
그들은 고넬료가 겪은 이야기를 베드로에게 해 주었고,
베드로는 안심하고 그들은 집 안으로 들입니다(22-23절).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이방인들이므로
자신도 마땅히 받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튿날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향합니다(23절).
그들은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고넬료의 집에 도착합니다.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4절).
베드로가 들어오자 그들은 일제히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일어나십시오.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26절)라고 만류합니다.
베드로는 집에 모여 있는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관습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그곳에 온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28-29절).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로 부정 탄다고 믿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고는(30-32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달라고 청합니다(33절).
그 때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행하고 계시는 놀라운 일을 깨닫습니다.
욥바에서 본 환상의 의미가 환히 깨달아졌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려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35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합니다(36-43절).
이것은 가장 간략하면서도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한 ‘복음의 요약’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동안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44절).
베드로와 그 일행은 성령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임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랍니다.
복음과 구원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47절)라고 말한 다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풉니다.
이로써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마침내 이방인들에게로 퍼져 나갑니다.
고넬료와 그 가족들은 로마로 귀환한 후에 로마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여 로마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묵상:
“한 사람의 신관이 그 사람의 인생관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전통적인 유대적 신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이해한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여라”는 말씀을 따라
유대인들은 거룩하지 않은 것들을 철저히 가려서 구별하고 차별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이나 장애인 혹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박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받은 사람들 그리고 율법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만을 돌보시고 축복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었기에 그들은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적 신관을 부정하셨습니다.
그분이 “아바”라고 불렀던 참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낳으신 분이며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선민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뜻이었는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견디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신관을 부정했다는 데 있습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께로부터 참된 하나님에 대해 보고 배웠지만
아직도 옛 신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조차 그 신관을 벗어나지 못하면 구원의 복음은
유다 땅 안에 갇혀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참된 하나님에 대해
눈을 활짝 뜨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고,
그로 인해 복음은 유대인의 경계선을 뛰어 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임한 결정적인 전환점이
바로 사도행전 10장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에 감탄합니다..
또한 내가 과연 참된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만든 우상을 믿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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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4-25
-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행10:44-45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다시 사신 사건은 온 인류의 기쁨의 소식이다. 더욱더 그런것이 이후 제자들을 통하여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소식이 전해 졌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은혜이다.
오늘 말씀은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말씀이다. 이방인에 대한 선교를 해야 하는가 고민하던 때 일어난 시간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허락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징벽은 더이상 없게된 것이다.
지금 그 은혜를 우리가 입어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되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장작 나는 그 은혜를 가로막고 있을 때가 있다. 특히 교회가 비판받는 지금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꺼려했다. 내심 전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오늘 말씀은 많은 질책이 된다.
하나님께서 정하다 한 것을 내가 부정하다고 하는 이상한 논리 를 이제는 버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밑기고 복음을 전해야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임을 오늘 깨닫게 된다. 주님, 깨닫게 하셨으니 그리 행할 수 있는 힘도 허락해 주세요. -
- 이형원전도사 19-04-27
-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
베드로와 교넬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베드로를 보냄으로
그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게 된다.
특별히 그가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받은 2가지가 오늘 말씀에 나타난다.
그것은 기도와 구제였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구제함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게 된다.
내 삶에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일들이 많이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내가 주님 앞에 진실로 기도할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와 구제를 보시고 기억하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어 기억하심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