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4.30(화) 행전14장_안전지대 밖의 삶
- 느헤미야강
- 2019-04-30
- 487 회
- 2 건
행전 14장_ 믿음은 안전지대 밖으로 떠밀리는 삶이다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늘 하던 대로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 믿는 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1절).
이고니온에서는 꽤 긴 기간 동안 머물며 전도했고,
많은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전도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박해는 점점 심해져서 마침내
두 사도의 목숨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사도들은 루스드라와 더베로 피신합니다(6절).
루스드라에서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바울을 통해 치유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8-10절).
그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기게 됩니다.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권에 속했던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신으로 간주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로, 바울을 헤르메스로 여기고는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 했습니다(11-13절).
두 사도는 그 사실을 알고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14절) 만류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그러한 우상 숭배를 떠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교합니다(15-17절).
그러는 중에 바울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몇몇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부터 루스드라에 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칩니다(19절).
그 일로 바울이 실신하자 그들은 죽은 줄 알고 성 바깥으로 끌어 냈는데,
다행히 그는 곧 정신이 들어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납니다(20절).
두 사도는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신자들을 얻은 후에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을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21절).
사도들은 믿는 이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 주고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22절)라고 위로해 줍니다.
그들은 각 동네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뒤에”(23절) 신도들의 양육을 맡깁니다.
안디옥으로 돌아 온 두 사도는 그동안 자신들을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보고합니다(24-28절).
이렇게 하여 첫 번째 선교 여행이 끝납니다.
묵상: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을 끊임없이 안전지대 바깥으로 밀어내십니다.
안전지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불편한 일이고
귀찮은 일이며 때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지대 안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안전지대 안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안전지대 바깥으로 밀어내려 하십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이렇듯 자기중심적 본성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불편한 일이고 때로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고난과 환난과 박해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22절).
그렇기에 고난과 환난과 박해를 마주할 때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놀랄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너무도 평탄하고 순조로울 때
잠시 멈추어 물어야 합니다.
“내가 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성령의 밀어내심을 따르고 있는가?
혹시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이전글 5.1(수) 행전15장_위기극복과 성령의 역사 19.05.01
- 다음글 4.29(월) 행전13장_믿음이 깊어질수록 십자가도 무거워진다 19.04.29
-
- 김성민목사 19-05-02
-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14:10
사도 바울이 나면서 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쳤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바울의 능력에 감탄하며 바울을 신으로 추앙했다. 바울은 그 순간에도 교만해지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적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 역사하시는데 사람이 나약한 존재인지라 일하시는 하나님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섬기게 되는 경우가 참 많이 있다. 기적 앞에 바울과 바울을 섬기려는 사람들과 같다.
사실 기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건의 중심이다. 예수님이 없이는 기적도 이적도 사람을 현혹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중심을 잃으면 안된다. 그래야 우리 믿음이 늘 든든히 설 것이다. -
- 이형원전도사 19-05-03
-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행14:4)"
이고니온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한 두 사도로 인하여 허다한 무리가 믿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유대인들을 자극시켰고 그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적하여 이방인들을 자극하여
바울에 대하여 악감을 품게 만드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의 결과를 그 곳은 두 무리로 나뉘게 되는데 바울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무리와
유대인들을 따르는 무리로 나뉘게 된다.
그곳에 있는 그 무리들은 바울의 말씀을 들은자와 유대인의 말을 들은자로 나뉘게 되었다.
아마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듣고 각자의 생각에 따라 결정하여 한 무리를 따르게 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선택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기도 혹은 그 반대로 예수님을 픽밥하는 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유혹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도전되어 지는 것임을 보게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이 곧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나의 삶 속에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