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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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수) 행전15장_위기극복과 성령의 역사
- 느헤미야강
- 2019-05-01
- 543 회
- 2 건
바울과 바나바의 지도 아래서 안디옥의 교회가 성장해 가고 있을 때,
유대 지방에서 몇몇 사람들이 찾아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으니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1절).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만나 만류했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그들 사이에는 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신도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파견하여
사도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했습니다(2절).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그들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보고했으나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가 신도가 된 사람 몇”(5절)은
이방인 신도들에게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었습니다(6절).
여러 정황을 추정해 볼 때 49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들은 이 문제로 “많은 논쟁”(7절)을 하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을 요구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안디옥 교회 대표들도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중재에 나섭니다(7절).
그는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을 회고하면서,
이방인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면
율법의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합니다(8-11절).
그런 다음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일어난 복음의 역사를 증언합니다(12절).
그들이 보고를 마치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아모스 9장 11-1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을 냅니다.
대신에 이교도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세 가지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을 먹지 말 것,
음행을 하지 말 것,
목매어 주인 것과 피를 멀리 할 것)만
요구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합니다(13-21절).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제안을 좋게 여기고
편지를 써서 대표를 뽑아 안디옥 교회로 보냅니다.
그 편지에는 혼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소행에 대한 사과와
예루살렘 회의에서 정한 세 가지에 대해 요청을 담았습니다(23-29절).
예루살렘 대표단과 안디옥 대표단은 편지를 가지고 안디옥에 이르러
신도들에게 예루살렘 회의에서의 결정을 보고합니다.
안디옥 교회 신도들은 그 모든 결정을 환영했고,
교회를 위협했던 첫 번째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예루살렘 대표단은 귀환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그대로 남아 목회에 전념했습니다(30-35절).
그로부터 얼마 후 바울이 바나바에게 다시 선교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합니다(36절).
그러자 바나바는 마가 요한도 데리고 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첫 번째 선교 여행에서 중도에 포기했다는 사실로 인해
요한 마가를 데리고 가기를 꺼렸습니다.
바나바는 그의 인품대로 마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었고,
철두철미했던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이 일로 인해 “심하게 다툰 끝에”(38절)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키프로스 방향으로 떠났고,
바울은 예루살렘 대표단으로 왔던 실라를 불러 데리고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떠납니다(39-41절).
묵상:
성경은 정직하고 솔직한 역사의 기록입니다.
미화하거나 날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토록 성령 충만했던 초대 교회에 이런 다툼과 논쟁과 싸움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저 위대한 바울과 바나바 사도 사이에 다툼과 분열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누가는 이 사실들을 담담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경고이면서 또한 위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고 성령 충만한 공동체가 된다 해도
인간적인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언제든지
갈등과 논쟁과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의 넘어짐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만나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는 갈등과 분열의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베드로와 바울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심에 기울지 않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려 했습니다.
그 진심이 위기를 극복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에 필요한 지도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반면, 바울과 바나바는 갈등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유익하게 변모되었습니다.
한 팀이었던 선교팀이 두 팀으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마가 요한은 바울 사도가 제일 아끼는 제자로 변모합니다.
한 때 다투고 갈라졌지만 나중에는 용서하고 화해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 넘어지고 잘못할 수 있지만
성령께서 결국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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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5-02
-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행15:1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못하였느냐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냐, 아니냐를 나타내는 너무도 중요한 구원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방인에게도 그대로 행해야 한다는 갈등을 겪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분명히 말한다. 구원의 문제는 결코 행위에 있을 수 없다. 성령이 일하심과 예수님의 은혜에만 있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그의 신앙적 경험에 의해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체험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들을 떠올리면 결코 베드로의 행위에 구원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그 누구 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우리도 이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착한 행실, 혹은 어떠한 특별한 행위를 통하여 죄의 용서, 구원을 말한다면 그것은 사이비 이단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려 구원받게 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 이형원전도사 19-05-03
-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행15:18)"
오늘 말씀에는 예루살렘에 회의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회의의 주제는 이방인에 관한 문제였다. 이방인으로써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된
새로운 성도들에게 유대인들의 율법을 다 지키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견차이가 있었고 이에 대하여 사도들을 통한 답변이 내려지길 바라는 회의였다.
아마도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그들의 전통과 율법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또한 그렇다고 이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유대인의 모든 율법을 따르게
히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가운데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방인에게 말씀이 증거되는 것이
옛 선지자들의 말씀과 일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방인들에게 무리한 율법의 의무를
지우는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교회에 중요하게 결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그 결정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어떠한 일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람의 생각에는 흠이 있고 부작용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그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문제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고민과 선택의 순간에 우리가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된다.
내가 나의 삶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삶이 이루어져 나갈 수 있도록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다.
나의 삶에 모든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하여 적용되어질 수 있도록 늘 묵상하며 깨어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