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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목) 행전22장_증인,증언의 힘
- 느헤미야강
-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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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 22장_증인, 증언의 힘
천부장의 허락을 받은 바울은 흥분한 무리를 진정시키고
히브리 말로 연설을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이방 도시 다소에서 태어났고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자신이 율법에 대한 신념에 따라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4절)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섰던 이력을 또한 소개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다마스쿠스까지 원정을 나갑니다.
그곳에 피신했던 신자들을 잡아 오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한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주장을 거짓말로 여겼는데,
그것이 진실이었던 것입니다.
그 일로 그는 잠시 시력을 잃습니다(1-11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아나니아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존경받던 사람으로서 예수를 믿던 사람입니다.
그가 찾아와 기도해 줌으로써
바울은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고 또한 세례도 받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을 바울에게 전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부활의 증인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는 예루살렘에 돌아옵니다.
어느 날 그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또 다시 환상을 봅니다.
그 환상에서 주님은 유대인들이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17-21절).
즉 그가 이방 도시들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다시 한 번 소동을 벌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과거에 그렇게 믿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부장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바울을 병영 안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는 원인을 알기 위해
천부장은 바울에게 고문을 가하여 취조하도록 명령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정당한 절차와 사유 없이 취조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항의합니다.
천부장은 그 사실을 알고 두려워하며 바울을 구금해 둡니다.
하룻 밤이 지난 후 천부장은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를 모이게 하고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변호하게 허락합니다(22-30절).
묵상:
직접 경험한 일만큼 분명한 증거는 없습니다.
교회의 박해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변한 것은
연구의 결과도 아니고 토론의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체험의 결과였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의 체험이 없었다면
그는 율법학자로 인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몇 번의 영적 체험을 통해
그는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확신이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직접 경험한 일을 증언하는 것만큼 강한 전도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해하려고 분노한 무리에게
자신이 경험한 일을 증언합니다.
그 증언 앞에서 무리는 합리적으로 반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증언을 제대로 듣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폭력으로 바울을 침묵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예수님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쯤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
누구 앞에서든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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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5-11
-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행22:21
예수님께서 다메섹도상에서 바울을 택하신 것도 다시 그의 눈을 보이게 하신것도 이방인 선교를 위함이었다고 바울은 고백한다. 역사적으로더 이러한 사실은 증명된다. 바울이 아니었다면 이방인 선교은 많이 늦어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베드로도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 소극적이었다. 반면 바울은 적극적인 이방인 선교를 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체험과 나는 죽었습니다. 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불가능이란 없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된다. 하지만 누군가를 통하여 하시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진다. 바울과 같이 나는 죽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갖는다면 하나님의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 질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쓰시고자 하는 사람, 바울과 같은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