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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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금) 고전3장_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
- 느헤미야강
-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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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3장_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
2장에서 바울 사도는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3장에서 드러납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1절).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매우 상처 되는 말이었습니다만,
바울은 피해가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3절)
육에 속한 사람이요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도를 따라 여러 편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육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과 같은 영적 지도자들은 단순히 “일꾼들”(5절)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따라 신도들을 위해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지도자들이 한 일은 단지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정도입니다.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요,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7절)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안다면 영적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충성 경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 자세를 밝힙니다(10절).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서 건물의 기초를 놓았을 뿐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1절).
그 위에 어떤 교회를 세우는지는 각자가 선택할 일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불을 비유로 사용합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타서 없어지는 것이 있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불은 두 가지 의미로 풀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땅에서 당하는 환난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
여기서의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불까지 견뎌낼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바른 믿음, 견고한 믿음으로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16절)라고 묻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성령이 거하시므로 믿음의 공동체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잊습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외모만을 보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고린도 교회처럼 분열을 겪게 됩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17절)라고 경고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17절)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서로 시기와 다툼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대한 경고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고 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지적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 하거든, 정말로 지혜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18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세상 질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누군가의 추종자가 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영적 지도자들은 그들을 위해 섬기는 종입니다.
그들이 바울이나 아볼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볼로나 바울이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23절).
이것을 제대로 안다면 그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충성 경쟁을 하지 않을 것이고,
고린도 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갈등도 해결될 것입니다.
묵상: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주어진 곳은 오직 시온 산 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성령과 함께 하면 그곳이 바로 성전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성전은 오랜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수난을 겪었고 오늘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기를 소망하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소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새로운 성전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마 18:20)는 말씀대로,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주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공동체는 거룩하고 소중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을 이겨내고
마지막 심판의 환난까지 이겨낼 수 있도록 바른 믿음,
신실한 믿음,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목사나 선교사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소명이요 영예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몸 된 교회, 내가 지체로서 섬기는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이 땅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내가 속한 교회가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도록 신실하게 헌신 하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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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6-11
-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7)"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단과 해답을 제시한다.
그의 논리 가운데 오늘의 말씀이 등장한다.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혹은 누구의 말이 옳은가?
이러한 것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써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위해 쓰임받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이 하는 일은 심고 물을 주는 일이다. 하지만 자라나게 하는 근본적인 일은 인간이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몫 즉 심고 물주는 일을 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나머지 영역은 책임지시고 그분의
능력과 섭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주고 심는이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심을 바울은 고백한다.
그저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신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한 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또 나는 누구에게 속했는가 라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바울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드러냄으로 이러한 논쟁에 대한 무의미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혹이 많다. 특별히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있는 사역자들은 그러한 유혹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오늘의 말씀이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나에게 기쁨이 되어야 할줄로 믿는다.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역자가 되길 기도한다. -
- 김성민목사 19-06-11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3:6-7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바울이나 아볼로가 너무도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에 더 잘 반응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그 안에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
바울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모습을 조심했다. 바울은 자신을 신으로 떠받들려고 했던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전하는 모습을 통하여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나님 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오늘의 말씀이 바울을 이끌어가는 힘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직 하나님뿐이니라”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 날마다 하나님만 자랑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